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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설교 원고

주제: 합당한 예배, 세상의 소망

소주제: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본문 출 28:9~12(참고. 창 2:10~12)

제목 기념 보석 호마노


“호마노 두 개를 가져다가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9) 그들의 나이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새기라(10) 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11) 그 두 보석을 에봇의 두 어깨받이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12)”(출 28:9~12)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10)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11)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12)”(창 2:10~12)



<서론>

오늘 본문은 성막에서 봉사할 구약의 제사장 예복 규례입니다. 특히 대제사장의 예복 규례 중 일부입니다. 대제사장은 세마포 속옷 위에 겉옷, 그리고 그 겉옷 위에 소매 없는 조끼 모양의 에봇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이 에봇의 양쪽 어깨 위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호마노 두 개를 달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 대제사장의 에봇 어깨 위의 호마노를 통해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직무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여러분에게 전할 설교의 주제는 이것입니다.


주제: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의 호마노를 통해 우리를 회복하십니다.”


대지:

1. 호마노를 사용한 이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에덴과 동산이 회복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2. 호마노에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이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 된 관계로 인치심을 받았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1. 호마노를 사용한 이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에덴과 동산이 회복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의 에봇 어깨 위에 왜 호마노를 달게 하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12절은 이 두 개의 호마노를 가리켜 “기념 보석”이라고 부릅니다.


“… 기념 보석을 삼되…  기념이 되게 할지며”(12절)


출애굽기 28장에 자주 등장하는 “보석”이라는 단어를 직역하면, ‘돌(stone)’입니다. 그리고 “기념”이라는 단어는 ‘회상하다’, ‘상기하다’, ‘잊지 않고 기억하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즉, ‘기억’, ‘회상’, ‘상기’, ‘잊지 않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기념 보석”이라는 말은 ‘회상의 돌’ 또는 ‘회상시켜주는 돌’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 말 속에는 저 먼 미래에도 ‘이 돌의 의미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뜻이 포함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 많은 보석 중 ‘호마노’를 지정해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미래에도 이 돌을 기억하라는 의미뿐 아니라 이 돌을 통해, 이 돌에 얽힌 과거 역사를 ‘회상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호마노’라는 이 단어는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여 성막을 만들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듣기 전에는 성경에서 단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참고 본문으로 읽은 창세기 2장 12절 단 한 곳뿐입니다.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10)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11)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12)”(창 2:10~12)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아담을 동산에 두셨을 때 세상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에덴에서부터 샘이 솟아나 온 세상으로 흘러가는 네 개의 강이 되었습니다. 그 첫째 강인 비손이 흐르는 지역은 하윌라 땅이었습니다. 이 땅에는 여러 가지 보석이 있었습니다. ‘순금’, ‘베델리엄’, 그리고 ‘호마노’가 그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비손 강이 흐르는 하윌라는 원래 여러 가지 보석이 있는 부요한 땅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에덴과 동산이 생명의 원천이며, 에덴으로부터 생명수의 강을 공급받는 땅이야말로 참된 부요(富饒)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에 두심으로 그들을 온 세상에 생명을 전하는 대리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뱀의 미혹에 빠져 범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동산 밖으로 쫓아내셨습니다. 동산 동쪽 입구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그들의 접근을 막으셨습니다. 

출애굽과 성막 제작은 아담의 타락으로 엉망이 된 것을 회복하는 놀라운 사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회복하고 계십니다. 에덴 동산과 닮은꼴로 성막을 만들게 하십니다. 아담과 닮은꼴로 대제사장과 제사장 의복과 규례를 만들게 하십니다. 정말 그런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출애굽 사건부터 생각해봅시다. 아담은 뱀의 미혹에 빠져 타락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사탄을 가리켜 옛 뱀과 용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계 12:9; 20:2).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뱀 또는 용과 같은 애굽과 그 통치자 바로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고, 그 뱀의 꼬리를 잡으면 다시 지팡이가 되는 표적을 주셨습니다(출 4:1~5; 7:8~12). 이 표적은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뱀과 같은, 그리고 용과 같은 애굽과 바로에게 승리할 것에 대한 상징이요 예언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홍해에서 바로와 그의 군대가 몰살한 사건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용의 머리를 깨뜨리셨다고 노래합니다.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13) 리워야단의 머리를 부수시고 그것을 사막에 사는 자에게 음식물로 주셨으며(14)”(시 74:13~14)


이뿐 아닙니다. 성경은 종종 애굽과 그 통치자 바로를 가리켜 뱀 또는 용으로 묘사합니다.


“애굽의 소리가 의 소리 같으리니 이는 그들의 군대가 벌목하는 자 같이 도끼를 가지고 올 것임이라”(렘 46:22)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그러니 출애굽 사건은 아담의 타락과 대비됩니다. 아담은 뱀의 미혹에 빠졌으나, 출애굽은 뱀과 용의 손에서 구원받은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뿐 아닙니다. 지금 이곳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을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양식과 모양을 모두 지시하셨습니다. 성막으로 들어가는 문은 단 하나입니다. 동쪽 문입니다. 성소와 지성소까지도 동쪽으로만 출입할 수 있게 제작되었습니다. 이는 동쪽에만 출입구가 있던 에덴 동산의 닮은꼴입니다. 성막은 회복된 에덴 동산이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아담은 동판 동쪽으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회복된 동산인 성막 동쪽 문을 지나 계속 동쪽 출입구를 통해 성소와 지성소 안까지 들어갑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대제사장은 회복된 아담, 새 아담입니다. 

이뿐 아닙니다. 성경의 여러 본문은 하나님의 성전에서부터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을 말씀합니다(에스겔 47장; 슥 13:1; 계 21:22; 22:1~2).

더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 중에 성막을 만든 장소인 시내 산이 있던 곳은 실제로 하윌라 땅이었습니다. 하윌라 땅은 시나이 반도를 포괄하는 매우 넓은 땅인데, 이스라엘은 그 안에 있던 시내 산에서 성막을 만든 것입니다.

창 2:12은 하윌라 땅에 ‘순금’, ‘베델리엄’, ‘호마노’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윌라 땅의 시내 산에서 성막을 만들 때, 가장 많이 사용된 재료가 무엇입니까? 바로 ‘금’과 여러 종류의 ‘나무’입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두 개의 호마노 역시 금테에 물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나무는 성막이 울창한 동산임을 상징합니다. ‘순금’은 바로 하윌라 땅에 있던 보석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면 ‘베델리엄’은 어디 있습니까? 사실 오늘날의 학자들 중 베델리엄이 정확히 어떤 보석(돌)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베델리엄’이라는 단어는 성경 전체에서 단 두 번밖에 사용되지 않습니다. 하나는 창 2:12입니다. 다른 하나는 민 11:7입니다.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민 11:7)


여기 한글성경에서 “진주”로 번역된 단어가 바로 ‘베델리엄’입니다. 성막 재료 중 베델리엄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윌라 땅에서 광야 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매일 – 안식일을 제외한 – 만나가 내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보자 그것이 마치 베델리엄처럼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까지 설명한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 아담은 의 미혹에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뱀이요 용과 같은 애굽에서 구원받았습니다. 

둘째, 아담은 동산 동편으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성막 동쪽 문을 통해 하나님 앞으로 들어갑니다. 

셋째, 에덴에서 이 발원하여 온 세상으로 흘러간 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장차 성전에서도 생명수의 강이 발원하여 온 세상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넷째, 에덴에서 발원한 강 중 비손 강이 흐른 지역은 보석이 많은 하윌라 땅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만든 시내 산이 있던 지역도 하윌라 땅이었습니다. 

다섯째, 하윌라 땅에는 순금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막 제작에도 상당량의 금이 사용되었습니다. 

여섯째, 하윌라 땅에는 베델리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중 매일 하늘에서 만나가 내렸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를 보고 금방 베델리엄을 떠올렸습니다.

여러분은 이상의 모든 내용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상의 모든 내용은 하나님께서 매우 의도적으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해 에덴과 동산의 모습을 재현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 남았습니다. 오늘 설교의 핵심 주제인 ‘호마노’입니다. 하윌라 땅에는 순금과 베델리엄 외에 ‘호마노’가 있었습니다(창 2:12).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이 겉옷 위에 입는 에봇 양쪽 어깨에 각각 호마노를 하나씩 달게 하셨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호마노’는 이 본문 이전에는 창 2:12에서만 언급됩니다. 그렇다면 ‘회상시켜주는 돌’ 호마노과거의 에덴과 동산의 생명과 부요를 회상시켜주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왜 이 호마노를 “기념 보석”, 즉 ‘회상시켜주는 돌’로 지정하셨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하여 성막에, 그리고 그 성막의 가장 깊은 곳인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을 통해 에덴과 동산이 회복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망쳐버린 옛 동산 대신, 새 동산 새 집을 장만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대제사장의 어깨에 달린 ‘회상시켜주는 돌’ 호마노를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낙원을 회복하여 선물로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집을 세우기 위해, 그분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새 집이요 새 동산인 성막에서 봉사하는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새 백성 전체를 대표, 대신하는 새 아담(a new Adam), 회복된 아담(a restored Adam)입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구약의 모든 대제사장 중 허물이 없는 자는 없었습니다. 그들조차 모두 죄인입니다. 마침내 흠 없고 완전한 대제사장이 오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타락과 실패를 잊지 않고 회복하셨습니다. 완전한 새 아담(the New Adam), 둘째 아담(the Second Adam), 마지막 아담(the Last Adam)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부요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잃어버린 에덴과 동산을 회복하셨습니다. 단번에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가심(참고. 히 9:12, 24)으로 죄인에게 차단된 낙원의 문, 하늘 성소의 휘장을 활짝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19)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20)”(히 10:19~20)


우리는 대제사장의 에봇 어깨에 달린 이 두 개의 호마노를 생각할 때마다 오직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된 생명과 부요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직 그분 안에서만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2. 호마노에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이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 된 관계로 인치심을 받았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호마노’라는 보석을 지정하셨는지 살폈습니다. 이제 눈을 돌려 이 두 개의 호마노에 무엇을 새겼는지 살펴볼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호마노 한 개에 각각 여섯 지파씩,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기라고 하셨습니다.


“호마노 두 개를 가져다가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9) 그들의 나이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새기라(10) 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11)”(9~11절)


그리고 이 두 개의 호마노를 대제사장 아론이 입는 에봇 어깨에 달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 두 보석을 에봇의 두 어깨받이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12절)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대제사장은 (모세를 제외한) 이스라엘 자손 중 하나님께로 가장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새 에덴 동산인 성막 안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대속하며 봉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혼자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는 혼자만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 전체를 자기 어깨에 짊어지고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전체를 짊어지고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대제사장과 함께 그냥 걸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면 안 됩니까? 왜 대제사장의 어깨에 매달린 보석의 모양으로 나아가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그들의 죄 때문입니다. 범죄 한 아담은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 동쪽 입구를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로 차단하셨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4)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인입니다. 여호와는 불이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혼자 힘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인 대제사장의 어깨에 매달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출 28:36~38에 의하면, 대제사장은 머리에 관을 써야 했습니다. 이 관의 앞부분, 즉 이마 쪽에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적힌 패가 달려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성결한 자만이 하나님을 뵐 수 있다는 뜻입니다. 대제사장의 어깨 위에 매단 호마노, 그리고 그 호마노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성결한 의인인 대제사장의 어깨에 매달려 하나님 앞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단 한 명도 성결한 자가 없습니다. 사실 예복과 에봇을 입고, 머리에 관을 쓴 대제사장조차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대제사장의 이 예복과 관은 장차 진정한 대제사장, 성결하신 대제사장이 오실 것을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그분이 누구십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정말 성결하신 분입니다. 그분에게는 도무지 죄가 없습니다. 그분은 완전한 의인이십니다. 그분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대제사장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원수 관계인 우리가 화목된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죄인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그분의 이름에 의지해서만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라는 고백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죄인인 우리는 누구도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단 한 분, 성결하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에게 매달려, 그분 안에서 죄 사함을 받아, 그분과 함께 하나님께로 나아갑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그 어떤 다른 이름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주,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19)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20)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21)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22)”(히 10:19~22)


본문 1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11절)


“도장에 새김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름을 두 개의 호마노에 새기라고 하십니다. 호마노에 이름을 새기는 행위는 삼위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 사역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분의 백성들 이름을 호마노에 새기십니다.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이름이 새겨진 백성들을 자기 어깨에 짊어지고 아버지께로 데려가십니다. 성령님께서는 그 백성들은 마치 “도장에 새김 같이” 인치십니다. 그래서 세상 끝날까지 그들을 지키십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13)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14)”(엡 1:13~14)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특히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구원 사역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제사장적 직무를 맡고 있습니다. 목사가 예배를 집례할 때, 그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백성들을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 길로 백성들을 인도합니다. 목사는 예배 시간에 ‘죄의 공적 고백’ 다음에 ‘사죄의 선포’를 낭독합니다. 이때 그는 온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성소 안으로 들어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깨에 그분의 백성들을 매는 바느질을 합니다. 목사는 예배 시간에 설교하고 성찬을 집례합니다. 이때 그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주고, 생명수 강을 마음껏 선사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는 강단에 참된 생명이 있습니다. 올바른 성례를 시행하는 곳에 참된 생명이 있습니다. 거기에 생명 나무의 열매가 있습니다. 거기에 생명수 강이 흘러나옵니다. 목사는 예배의 마지막에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선포합니다(복의 선포). 바로 그때, 그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로부터 온갖 복이 흘러나옴을 보여줍니다(참고. 계 22:1~2). 동시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자는 모든 복을 잃어버리고 동산 바깥으로 쫓겨날 것을 경고함으로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어깨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간수하는 역할도 합니다.

목사뿐 아니라 장로와 집사 역시 온 교회가 그리스도께 달려 있는지 살피는 제사장적 직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장로는 성도들을 심방하여 그들이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돌봐야 합니다. 거짓 교사들이 백성들을 미혹하지 않도록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집사는 성도들을 위로함으로 그들이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돌봐야 합니다.

직분자들뿐 아니라 성도들 역시 제사장적 직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깨에 그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분의 어깨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세상 가운데서 거룩한 신앙과 거룩한 삶을 통해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들에게 삼위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여 목사가 전하는 복음을 듣게 합니다. 그들은 이를 통해 다른 이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어깨 위로 인도합니다.

각 가정의 부모 역시 제사장적 직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족이 그리스도께 달려 있는지 살펴야 할 책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가 이렇게 제사장적 직무를 바르게 수행할 때, 정말 만인 제사장으로서의 자태가 교회 안팎에 나타납니다.


<결론>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의 에봇 어깨 위에 호마노를 매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가리켜 “기념 보석”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첫째, 왜 수많은 보석 중 호마노를 지정하셨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에덴과 동산이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왜 호마노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겼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어깨 위에 매달려 하나님 아버지와 화목 된 관계가 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성령 안에서 도장에 새김 같이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이제 교회 직분자들과 성도들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예배를 통해, 생활예배를 통해 언제나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집을 건설하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삼위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아멘!



<설교 이해를 위한 질문>


1. “기념 보석”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2. 출애굽 사건과 성막 제작이 아담 당대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1) 뱀과 관련하여


2) 동쪽 문과 관련하여


3) 강과 관련하여


4) 하윌라 땅과 관련하여


5) 순금과 관련하여


6) 베델리엄과 관련하여


3. 기념 보석 호마노는 무엇을 회상시켜줍니까? 또한, 성막과 대제사장의 사역을 통해 무엇이 회복되고 있습니까?


4. 하나님께서는 두 개의 호마노에 새기게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5. 하나님과 화목 된 관계가 되기 위해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꼭 필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분이 성결한 의인이신 것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6. 호마노에 이름을 새기는 것이 삼위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 사역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7. 교회 직분자들 – 목사, 장로, 집사 – 의 제사장적 직무를 설명해보십시오.


8. 각 가정의 부모와 성도들의 제사장적 직무를 설명해보십시오. 이를 ‘만인 제사장’과 관련해서 설명해보십시오.


9. 한 걸음 더: 버가모교회에게 주신 말씀(계 2:12~17)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중 사용된 용어로 가득합니다.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계 2:17)이 광야 생활 중의 “만나”와 “베델리엄”(출 16:31; 민 11:7)과 어떻게 연결될까요?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계 2:17)이 호마노와 판결 흉패의 보석들에 열두 지파의 이름을 기록한 것(출 28:9~12, 21)과 어떻게 연결될까요?



  1.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1년 전체 설교문)

    Date2021.04.27 Bykosin Views2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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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십계명을 통해 본 합당한 예배(1년 전체설교문)

    Date2021.01.04 Bykosin Views2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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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제70회 총회(2021년) 공동기도문과 실천사항

    Date2021.01.04 Bykosin Views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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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21년 총회 주제 모범설교문(공지)

    Date2020.12.22 Bykosin Views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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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서의 예배12(첫번째 크리스마스의 예배, 누가복음 1장 1-20절)

    Date2022.09.06 Bykosin Views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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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서의 예배11(하나님께 예배하며 영원히 다스림, 계시록 22장 1-8절)

    Date2022.09.06 Bykosin Views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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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서의 예배10(예배자의 기쁨, 계시록 5장)

    Date2022.09.06 Bykosin Views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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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12(물두멍, 출애굽기 30장 17~21절)

    Date2022.05.19 Bykosin Views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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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11(향단, 출애굽기 30장 1~10, 34~38절)

    Date2022.05.19 Bykosin Views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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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10(떡상과 진설병, 레위기 24장 5~9절)

    Date2022.03.04 Bykosin Views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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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예배전쟁 12(찢어진 휘장 히10장)

    Date2022.02.07 Bykosin Views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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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예배전쟁 11(몸을 찢은 자들이 예배한다고 고전11장)

    Date2022.01.05 Bykosin Views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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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예배전쟁 10(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요4장)

    Date2022.01.05 Bykosin Views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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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서의 예배9(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영혼을 쏟아 일하라, 엡 6, 5-9)

    Date2021.10.26 Bykosin Views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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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9(성령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와 평강, 계시록 1장 3~6절)

    Date2021.09.16 Bykosin Views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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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8(하나님께서 정하신 합당한 예배, 히브리서 9장 1~5절)

    Date2021.09.16 Bykosin Views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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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7(기념 보석 호마노, 출애굽기 28장 9~12절)

    Date2021.09.16 Bykosin Views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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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예배전쟁 9(생명과 바꾼 예배 단3장)

    Date2021.08.25 Bykosin Views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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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서의 예배8(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서의 가정- 설교 두 편, 엡 5, 21-33 )

    Date2021.08.09 Bykosin Views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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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서의 예배7(하나님의 종인 공직자에게 복종하라 롬 13,1-7 )

    Date2021.08.09 Bykosin Views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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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예배전쟁 8(재개된 예배의 능력 대하31장)

    Date2021.08.09 Bykosin Views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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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예배전쟁 7(여호와의 응답이 넘치는 승리하는 예배 왕상18장)

    Date2021.07.08 Bykosin Views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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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6(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출애굽기 25장 8-22절)

    Date2021.06.10 Bykosin Views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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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5(동쪽 문, 민수기 3장 38절, 참고-창세기 3장 24절)

    Date2021.06.10 Bykosin Views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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