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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 4

설교제목/ 하나님의 임재가 넘쳐나는 예배시작


설교본문/ 시편 124:1-8; 로마서 1:1-7

주제문장/ 예배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회중에게 충만히 임재하셔서 인사하고 복 주신다.

설교개요/ 예배전에 우리는 함께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 피아노 반주자의 역할이 중요하고, ‘예배부름’으로 예배가 시작하는데 회중이 하나님께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주의 회중에게 복 주시는 ‘기원’을 하신다. 그러면 회중은 하나님께 ‘경배찬송’을 올려 드린다. 이렇게 예배가 시작할 때부터 하나님의 임재가 넘쳐난다.



■ 시 124:1-8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3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이며 

4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5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6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7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 롬 1:1-7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예배직전의 준비는 그리스도의 한 몸 됨을 위한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성도 여러분, 주일이 되어 신자들이 예배당에 와서 예배실에 입장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주일에 예배당으로 갈 수 없다면 예배당에 입장하는 장면을 머릿 속에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예배실 문을 일찍 연다면 1시간 전에 예배실에 입장할 수도 있고, 예배실 문이 늦게 열린다면 30분 전이나 10분 전에 예배실에 입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배실 문을 일찍 열수록 예배실에 들어온 신자들이 예배당에 머무는 시간이 많고 예배 직전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문제됩니다. 예배 직전까지 조용히 기도하면서 예배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게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예배실에 앉아서야 비로소 예배에 대해 생각하고 기도한다면 너무 늦은 것이지만 기도하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이겠습니까? 
    예배 직전의 기도는 개인 경건을 고양시키기 위한 사적인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회중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직전이기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의 한 사람인 것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신자들이 주의 거룩한 몸을 이루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들을 만나 주신다는 것을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예배를 통해 직분자들의 직분사역이 분명하게 드러나서 우리의 구원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받고 누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지상의 모든 교회가 다른 장소에서, 다른 시간대에 예배하지만 그 모든 예배가 하나의 예배로 하나님께 드려지기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교회들은 개인적으로 조용히 기도하더라도 신자들의 절반 정도가 예배실에 들어오게 되면 마음을 모으기 위해 같이 찬송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유럽의 경우에는 조용한 기도와 더불어 성경읽기가 선호되었습니다. 예배시에 설교할 성경본문을 읽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마음을 준비시키기 위해 구약이며 신약이며 다양한 성경을 읽었습니다. 예전에는 읽기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 바깥으로부터 전문적인 낭독자를 불러서 성경을 읽도록 했습니다. 지금도 로마가톨릭에서는 이 전통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서 강론대(우리의 설교단에 해당함) 외에 독서대(Ambo, 이 단어는 헬라어로 ‘올라간다’라는 뜻의 아나바이나인
αναβαινειν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 곳으로 올라가서 성경을 읽는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위에서부터 지상으로 선포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이다)가 따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차츰 세월이 흘러가면서 이 성경읽기는 교회내의 직분자들이 해야 할 일로 인식되어 갔습니다.

피아노 반주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중요한 봉사를 하는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르간 반주자입니다. 한국교회는 대부분 오르간 대신 피아노를 예배악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개혁한 교회가 처음부터 오르간을 예배반주에 적합하다고 본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오르간을 사탄이 고안해낸 악기라고 생각해서 그것을 연주하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치부하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개혁한 교회는 다른 악기보다 오르간이 예배반주에 적합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배할 때 오르간 반주자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했습니다. 한때는 오르간 반주자를 목사와 견줄 수 있는 예배를 이끄는 직분자로 간주할 정도였습니다.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르간 반주자를 그 교회의 ‘찬송의 양심’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예배 때 가장 먼저 교회에 오는 사람이 바로 이 오르간 반주자이기도 합니다.
    예배 전에 반주자가 어떤 곡을 연주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사적으로는 어떤 곡이든지 연주할 수 있겠지만 예배 직전에 연주하는 곡은 선별된 곡이어야 합니다. 예배를 잘 준비할 수 있는 곡이어야 합니다. 언제 연주를 시작해야 하고, 언제까지 연주를 해야 하느냐는 교회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연주를 계속하다가 예배 직전에 중단하므로 예배가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립니다. 이런 방식에서는 예배 직전이 가장 조용한 시간이 됩니다. 기도도 그치고, 찬송도 그치고, 교인들과의 대화도 그칩니다. 그 어떤 소리도 없습니다. 예배 직전에 아무 소리가 없는 것은 하늘의 소리를 듣기 위한 준비입니다. 정반대의 방식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예배실 구조상 피아노 연주가 집중되기 힘들다면 예배 직전에 연주를 하면서 예배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릴ㄹ 수도 있습니다.
    피아노 반주자는 예배중의 찬송 반주뿐만 아니라 예배 전후에도 연주하는 등 많은 봉사를 합니다. 피아노 반주자는 홀로 무거운 짐을 지고 외롭게 연주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반주자는 예배 인도자와 호흡을 맞출 뿐만 아니라 회중의 찬송을 돕고 그들과 함께 합니다. 피아노 반주자는 예배 때 자신이 회중과 유리된 자가 아니라 회중과 함께 모든 것을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인식이 없으면 반주자는 자신의 연주실력에 의존하게 될 것입니다. 반주자는 예배하는 회중과 유리되어 외로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교인들은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피아노 반주자를 알아주어야 하겠고, 당회는 반주자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 필요를 채워주어야 할 것입니다.

예배부름’(↑)으로 예배가 공적으로 시작된다

    이제 약속된 예배시간이 되었습니다. 예배 인도자가 장로와 악수하고 등단하여 강단에 섰습니다. 예배가 시작된다는 선언을 해야 합니다. 소위 말하는 개회선언을 해야 합니다. 예배의 개회선언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한국교회에서는 언제부터,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예배 인도자가 종을 땡 치면서 ‘성가대의 주악에 맞추어서 다같이 묵상기도 드리므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다같이 고개를 숙여서 묵상기도를 하는데 잠시 시간의 간격을 두고 인도자는 성경을 한 두 구절 읽은 후 간단한 기도를 합니다. 예배 직전까지 기도해 왔는데 또 다시 기도하므로 예배가 시작된다는 것은 기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요? 기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예배가 우리의 기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나아가기에 예배시작 할 때 머리를 숙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기보다는 모든 신자들과 더불어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머리를 들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개혁한 교회는 예배의 개회사를 ‘예배부름’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예배부름’을 통해 예배가 공식적으로 시작됩니다. 개회선언은 형식적인 선언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회선언이야말로 모임의 공식적인 시작을 알리는 것이기 때문에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 전에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은 아무리 훌륭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소위 말하는 식전행사요, 공식적인 모임이 아닙니다. 예배 부름과 더불어 이제부터는 공적인 일로 들어섭니다. 이제는 더 이상 사사로운 것이 작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공적인 만남으로 돌입했기 때문입니다.
    ‘예배부름’은 라틴어 보툼(Votum)이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래 이 보툼이라는 용어는 라틴 세계에서 서원이나 서약을 할 때 많이 사용하던 단어였습니다. 라틴교회는 라틴의 일상세계에서 흔히 사용되던 이 용어에 세례를 주어서 예배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이 용어가 거의 사라졌지만 이후에 영어권에서 이 단어를 번역하지 않고 라틴어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용어가 일찌감치 예배용어로 정착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용어는 신앙고백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에 예배의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 주기는 하지만 다른 언어로는 번역하기가 까다로운 용어였습니다.

예배부름은 우리가 하나님을 불러내는 것이 아니다

    ‘예배부름’은 ‘예배로의 부름’(Call to Worship)이라고 하면 더 정확할 것입니다. 부름이라고 했으니 누가 누구를 예배로 부른다는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부르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찾고 부르는 것입니까? 어느 것이 먼저입니까? 물론 하나님의 부름이 먼저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의 자발성과 창의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불러 모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부르심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한 회중, 하나님의 한 총회가 되어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예배부름’은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라는 시편 124편 마지막 절을 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우리의 도움이라고 외치는 것이 예배부름입니다. 개혁자들은 왜 이 구절을 처음부터 예배부름의 문구로 사용한 것일까요? 우리가 같이 읽었던 시편 124편은 시편 120편부터 시작되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시편들을 잘 살펴보면 놀랍게도 순례자들이 세상을 뒤로 하고 성전에 올라가는 과정, 성전에 도착하여 예배하는 장면, 성전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까지 순서적으로 선명하게 그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124편의 앞뒤를 잘 살펴보면 본 시편의 정황이 드러납니다. 순례자들이 성전에 도착하여 다른 순례객들과 어울려 하나님의 회중이 되어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하는 장면입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예배부름으로 딱 맞아 떨어지는 구절입니다.
    그래도 이 ‘예배부름’이 예배의 시작이라는 것이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찾아올 수 없습니까? 하나님을 수없이 불러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찾아오시고 그래야 예배가 시작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예배 전부터 그렇게 계속해서 기도한 것입니까? 예배는 우리의 간절한 서원과 서약에 달려 있습니까? 아닙니다. 예배의 주도권을 쥐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 가운데 찾아와 주셨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종교의식은 신을 불러내는 주문(呪文)을 강조합니다. 다양한 주문에 의존하여 신을 불러내어서 그 신과 거래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분이요, 천지를 초월해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주문을 통해 불러 내어서 소원을 말하면 그 소원대로 들어줄 수밖에 없는 마술램프 속의 지니가 아닙니다. 예배부름은 우리가 하나님을 불러내는 주문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우리의 도움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우리의 헌신과 충성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예배 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들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예배부름은 개회선언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예배부름은 개회선언을 알리는 망치소리나 종소리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되어 하나님을 향하는 거룩한 몸짓과 호소를 공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예배부름입니다. 어떤 전통에서는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대신에 ‘우리의 도움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에 있도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삼위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고백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 예배부름은 예배인도자가 회중을 대표하여 외칩니다. 하지만 16세기의 어떤 교회 예식서에 보면 이 예배부름을 예배 인도자와 회중이 나누어서 하기도 했습니다. 인도자가 “우리의 도움은 어디에서 옵니까?”라고 하면 회중은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습니다”라고 응답합니다. 묻고 답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 예배부름의 문구를 인도자와 회중이 나누어서 할 수도 있습니다. 인도자가 ‘우리의 도움은 여호와의 이름에 있습니다’라고 하면 회중이 ‘그 분은 천지를 만드신 분입니다’라고 하기도 합니다.

예배부름 다음에 하나님의 인사인 ‘기원’(↓)이 따라온다

    예배부름 다음에 오는 순서가 ‘기원’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고 그냥 ‘인사’(Greetings)라고 말하면 됩니다. 누가 누구에게 인사하는 것이겠습니까? 많은 교회들에서는 이 축복의 인사말을 예배부름 앞에 두기도 합니다. 예배 인도자와 회중이 인사말을 주고 받습니다. 서로를 향해 경건한 ‘기원’을 합니다. 예배 인도자가 회중을 향해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하면 회중은 예배인도자를 향해 ‘당신과도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라고 인사합니다.
    그런데 이 인사말은 인도자와 회중 사이에 주고받는 인사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향해 인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사하신다고 하니 이상하게 들립니까? 교회가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와 충성을 표시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향해 복이 가득한 말씀으로 인사하십니다. 이 인사는 ‘하나님의 복선언’과 다를 바가 아닙니다. 예배 마지막에 있는 강복선언과 구분하기 위해 ‘기원’이라고 부를 뿐입니다. 하나님은 저 하늘 위에 앉아 계시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원이라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복을 빌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복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부르면 하나님께서는 가까이 다가오셔서 복을 선언해 주십니다. 이 인사말이 예배 때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모든 말씀들 중에 첫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총회는 일상적인 문안 인사를 넘어서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인사를 받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이 인사말을 대신합니까? 예배 인도자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인사말을 합니다. 인사말을 할 때 예배 인도자는 예배 부름에서 했던 역할과 반대 입장에 섭니다. 예배 부름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자로서 하나님께 외쳤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입이 되어 회중을 향해 하나님의 인사와 복을 건넵니다. 이 인사는 일상적인 문안 인사가 아니라 복을 담은 하나님의 인사입니다. 이 인사말은 기도나 기원이 아니기 때문에 목사는 경건한 말들을 늘여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인사말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성경에 다양한 인사말이 기록되어 있다

    어떤 인사말이 좋겠습니까? 사도바울은 교회를 향해 편지하면서 다양한 인사말을 사용했습니다. 그 모든 인사말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평강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빠져있지만 성령님은 배경이 되시면서 은혜의 평강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로마서 1장 7절이 대표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라는 구절입니다. 인사말이 너무 길면 좋지 않겠지요? 어떤 분들은 이런 인사말이 너무 길다고 생각합니다. 짧으면 짧을수록 신자들 머리 속에 선명하게 새겨지니까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라고만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이 삼위 하나님이기에 성령님도 언급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삼위 하나님에 관한 언급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인사말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4절과 5절입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성부를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성령님을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성자에 대한 언급은 상당히 긴데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인사말은 너무 길지 않습니까? 길어도 한 번씩 하면 얼마나 풍성한 인사가 되겠습니까?
    목사는 두 손을 들고 성경구절로 이 인사말을 건넵니다. 아니, 하나님의 복을 선언합니다. 인사할 때 가장 기본적인 예절이 있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면서 인사를 주고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사할 때 눈을 감고 인사하고 인사를 받으면 되겠습니까? 목사가 이 인사말을 하는 동안 회중은 눈을 뜨고 하나님의 인사를 받고,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들려진 목사의 두 손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인사하고, 여러분에게 복 주십니다.

예배자리에 선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지를 알아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가 어떻게 시작됩니까? 예배준비를 아무리 오랫동안 많이 해도 예배가 공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예배준비를 많이 해도 그것은 준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공적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공적으로 찾아오시는 순간이 중요합니다. 그 이후로부터는 하나님과의 공적인 만남이 계속됩니다.
    하나님의 총회는 하나님의 궁전에 나아가면서 ‘하나님은 우리의 유일한 도움’이라고 외칩니다. 시편 121편에 보면 동일한 고백이 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고백합니다. 비슷하지요? 차이가 뭡니까? ‘나의 도움’과 ‘우리의 도움’의 차이입니다. 시편 121편은 순례자가 순례길 속에서 부른 노래입니다. 시온 산으로 순례하면서 그는 모든 산들의 위협을 절감합니다. 순례길 속에 있는 산들에는 흉악한 강도나 사나운 짐승들의 위협으로 넘쳐납니다. 순례자는 그 산들 너머에 계시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순례자는 구체적인 고백으로 ‘나의 도움은’이라고 했습니다. 그 힘들고 위험한 순례를 마치고 성전이 있는 시온산에 도착했습니다. 순례자들은 개별적인 신앙고백을 넘어 하나님의 회중이 되어 ‘우리의 도움은’이라고 고백하면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그 회중을 향해 하나님의 복을 담은 인사말을 건네십니다.
    회중의 충성고백인 ‘예배부름’(↑)과 하나님의 인사인 ‘기원’(↓)은 마주 보고 서 있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한 쌍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에다가 첫 번째 ‘찬송’(↑)이 덧붙여집니다. 찬송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예배의 첫 번째 찬송은 새찬송가 앞쪽에 ‘경배와 찬송’이라는 표제를 가진 찬송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세 가지를 흔히들 ‘예배 시작의 3가지’라고 부릅니다. 예배부름(하나님을 부름)과 기원(하나님의 인사)과 찬송(하나님을 찬송)은 예배가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언약적인 교제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부르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회중의 예배부름이 하나님의 인사인 기원을 불러내고, 기원이 예배부름에 효력을 줍니다. 신자들은 예배 시작 순서들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합니다. 예배시작 순서들인 예배부름과 하나님의 인사와 경배찬송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합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부름과 기원과 찬송은 하나님의 현존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역할을 합니다.
     예배 때 은혜를 풍성하게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십니까? 예배를 제대로 드려야 큰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순서가 뒤바뀌었습니다. 신자들은 은혜를 받고 복을 받았기 때문에 예배합니다. 예배는 은혜받고 복 받기 위해 하나님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받은 은혜와 복을 형제 자매들과 더불어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 시작부터 주의 회중과 함께 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끝까지 다 지켜보신 후에 괜찮았다 싶으면 복을 주시고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과 하나님의 임재는 끝에 가서야 겨우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규례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세 사람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그 곳에 계십니다. 그래서 공예배가 복입니다. 우리가 다른 신자들과 함께 예배의 자리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이 아침에 부활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목놓아 불러야 마지못해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예배 시작 순서들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복이 넘치게 부어짐을 확인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예배부름과 기원과 경배찬송을 통해 하나님의 현존 가운데로 들어가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모든 은혜와 복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온다는 것을 저희들에게 가르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공적으로 만나주시는 방편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배가 나 개인의 경건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회중이 하나되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문제임을 더욱더 깊이 깨닫게 하옵소서. 세상에 살 때는 우리가 홀로인 것 같았지만 주일에 예배당에 나와 다른 성도들을 보니 우리가 성도의 교제와 교회의 울타리 속에 있음을 확인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같이 동참하고, 그리스도의 영광에도 같이 동참할 성도들과 더불어 같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성도들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어 하나님을 예배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과 외로움을 떨쳐버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가 엉뚱한 곳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도록 하옵소서.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냐’라는 의문도 들 때가 있는데 주일 공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넘치는 임재가 주의 백성들 가운에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예배 후에 어떤 특별한 은혜가 따로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온전히 받게 하여 주옵소서. 예배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알고 예배의 감격에 빠져들게 하옵소서. 예배를 제대로 하기만 해도 한 주간을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음을 알게 하시고 이 은혜와 평강이 우리 생애 마지막 날까지 이어지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 묵상하고 나누기

1. 회중은 예배시작까지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2. 예배 전에 반주자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3. 예배부름(Votum)이란 용어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4. ‘예배부름’의 문구가 무엇입니까(시 121편과 124편의 차이를 보세요.)

5. ‘기원’, 즉 인사는 누가 누구에게 인사하는 것이고, 성경에는 어떤 인사말들이 있습니까?

6. 예배부름과 기원 후에 오는 ‘찬송’은 어떤 찬송이어야 할까요?

7. 예배시작 순서들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묵상해 봅시다.

어린이를 위한 질문

1. ‘예배부름’은 우리가 하나님을 불러내는 것이다, 맞습니까?

2. ‘기원’은 하나님께서 복을 선언해 주시는 순서이다, 맞습니까?

3. 예배시작 순서들인 ‘예배부름’과 ‘기원’과 ‘찬송’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     )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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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1년 전체 설교문) 1 file kosin 2021.04.27 3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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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 1(품위있게 질서있게 그리고 덕스럽게, 고전 14:26-33, 롬 13:11-14) file kosin 2020.12.22 1667
46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 예배 1(예배하는 교회의 일상생활에서의 승리, 대하 20:1-30) file kosin 2020.12.22 2469
45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 2(예배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히12:18-24, 시122:1-9) file kosin 2021.01.08 1402
44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 3(예배 직전에 있는 일들, 시22:22-31, 히10:19-25) file kosin 2021.01.08 1365
»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 4(하나님의 임재가 넘쳐나는 예배시작 시124:1-8, 롬1:1-7) file kosin 2021.01.15 2127
42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 5(죄고백과 사죄선언이 있는 예배, 요20:19-23, 약5:13-18) file kosin 2021.01.15 1683
41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 예배 2(말씀이 회개와 회복을 일으킨다, 느8:1-12) file kosin 2021.01.1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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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 6(고백과 율법이 살아있는 예배, 신 4:10-14, 롬 10:10-15) file kosin 2021.01.26 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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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3(옮겨다니는 하나님의 집, 민 10장 11-13, 28, 33-36절) file kosin 2021.02.18 1666
34 예배전쟁 3(하나님의 군대가 금송아지를 섬기다 출32장) file kosin 2021.02.2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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