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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 3

설교제목/ 예배 직전에 있는 일들


설교본문/ 시편 22:22-31; 히브리서 10:19-25

주제문장/ 회중과 직분자는 예배를 잘 준비해야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서 예배한다

설교개요/ 교인들은 토요일부터 주일예배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신자들은 주일에 예배당에 나와서 주의 거룩한 몸을 이루어서 예배한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직분자들은 공적으로 맡겨주신 예배인도를 잘 감당하도록 기도하고, 목사는 공적위임을 받아 예배를 인도하기에 담대하게 강단으로 나아간다. 회중이든지 직분자든지 예배 때 홀로 있어서는 안된다. 
 

■ 시 22 : 22 – 31

2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25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29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30 후손이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31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 히 10 : 19 - 25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예배준비는 토요일부터 이루어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배를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예배준비는 주일아침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토요일부터 시작됩니다. 토요일 저녁에 가족이 식탁에 모여 주일을 위해, 예배와 성도의 교제를 위해 기도합니다. 토요일과 주일의 관계, 주중 6일과 주일의 관계가 어떠합니까? 주일에 대해 생각할 때 먼저 우리는 주일이 ‘한 주간의 첫 날’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첫 창조 시에는 안식일이 한 주간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안식 후 첫날 부활하시므로, 부활하신 그 주일이 한 주간의 첫 날이 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일하고 난 다음에 안식했는데,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안식하고 난 다음에 일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안식을 먼저 누리고 모든 날들로 안식이 확대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가져다 준 놀라운 유익입니다. 
    한 주간이 끝나고 새로운 한 주간이 시작됩니다. 주일이 된 것입니다. 주일 아침에 각 가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집니까? 주일은 쉬는 날이기에 이 날만큼은 늦게까지 잠자고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주일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마도 엄마일 것입니다. 엄마가 먼저 일어나 아빠를 깨웁니다. 아빠는 襪분만 더!’하면서 이불을 뒤집어 씁니다. 이제는 아이들을 깨울 차례입니다. 아이들 방으로 가서 일어나라고 이불을 걷어 놓으면 아이들도 襪분만 더요!’하면서 이불을 머리 위로 뒤집어 씁니다. 이것을 수차례 반복하고선 겨우 잠이 깹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아빠는 일주일 내도록 회사나 일터에서 피곤하게 일했기에 주일만큼이라도 늦게까지 늘어지게 자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토요일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주말이라고 생각해서 늦게까지 뭔가를 하느라고 자정을 넘겨서야 잠자리에 들기도 합니다. 주말의 명화를 본다든지,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느라고 늦게 잠들었다면 더더욱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겠지요. 겨우 일어나 씻고,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허겁지겁 교회로 향합니다. 한바탕 전쟁을 치른 사람들처럼 피곤한 몸으로 교회로 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에는 주일 아침의 풍속도가 급격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중대형 교회의 경우에 한한 것일 수는 있지만 예배가 몇 부나 있고,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얼마든지 예배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부모와 자녀가 다른 장소에서, 다른 시간대의 예배를 드리니 각자 알아서 교회로 가면 됩니다. 주일마저도 가족이 따로 움직이고, 한 교회 교인이라는 것을 느끼기 힘듭니다. 예배가 몇 부나 있는 것, 부모와 자녀가 따로 예배하는 것이 우리가 한 언약백성이라는 것, 우리 가정이 언약가정으로 부름 받았다는 것을 고백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코로나 시대가 좋은 것은 예배당에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침대에서 일어나 그냥 화면만 켜면 됩니다. 그러면 영상으로 전송되는 예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편해졌습니까?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 좋겠습니까?  

한 몸 의식을 가지고 예배실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주일에 예배당에 가는 것을 기다립니다. 예배당에 언제쯤 도착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한국교회의 전통 중에 하나가 오전예배 전에 성경 공부시간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유럽 같은 경우에는 예배당 문이 일찍 열리지 않습니다. 교회에 일찍 도착한 신자들은 예배당 마당에 길게 줄을 서서 예배당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고 비나 눈이 오는데도 불구하고 피하지 않고 예배당 앞에 길게 줄을 늘여 서서 기다립니다.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기다린 끝에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예배당 문이 활짝 열리면 신자들이 예배당에 입장합니다. 
    교회 마당이나 복도에서 예배실로 바로 입장하는 것이 좋은 것이겠습니까? 어떤 교회들은 이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배실로 바로 입장하는 것이 좋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일까요? 예배를 준비하는 별도의 장소를 마련해야 한다는 말일까요? 그렇습니다. 교회 정문이 예배실로 바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예배실 직전에 신자들이 교제할 수 있는 예배 준비실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예배하기 전에 성도들이 교제할 수 있는 방을 배치합니다. 그 교제하는 방을 통해서 예배당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주일예배를 자기 자신과 하나님이 사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으로 오해하는 요즘 분위기 속에서는 이런 예배당 구조가 좋은 예배신학을 담고 있습니다. 예배 준비실이 있다면 성도들이 교제하면서 우리가 주님의 몸으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배 준비실이 있든지 없든지 우리는 예배할 때에 단독자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회중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생각은 교회가 어느 순간에 발견한 생각이 아닙니다. 조직원리 관점에서 교회가 창안해 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구약시대부터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입니다. 지난 주일 말씀 드렸듯이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한 자리로 모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부르심에 의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회중이 되어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그 모임이 최초의 공예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하나님의 총회를 만나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 매달려 계실 때에 묵상하셨던 시편입니다. 22절에 기록하고 있듯이 예수님은 자신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주의 형제들, 즉 하나님의 회중과 총회가 생겨날 것을 내다 보셨습니다. 25절에 보면 ‘큰 회중’이 생겨날 것을 예상하셨는데 어떤 번역에서는 ‘대회’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대회가 열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대회라고 하면 축제를 벌이는 큰 행사나 어떤 주제를 놓고 서로 경쟁하는 대회를 떠올리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 자체가 대회입니다. 가장 위대한 대회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한 형제가 되어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우리는 우리 단독으로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주의 몸의 지체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없이는, 또한 서로가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그 곳에 내가 함께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배당 좌석은 어떤 차별도 두지 않는다 

    신자들이 예배 준비실에서 하나님의 회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 예배실로 들어가 자리를 잡습니다. 예전에는 남자석과 여자석이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가운데 줄은 여자석이고, 오른쪽, 왼쪽 줄은 남자들이 앉는 줄로 정해지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사고방식 때문에 예배당을 기억(ㄱ) 자 구조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기억(ㄱ) 자가 꺾이는 부분에 강대상이 있어서 예배 인도자는 오른쪽을 보았다가 왼쪽을 보았다가 하면서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남녀는 예배당에 들어오는 입구부터가 달랐고, 예배 드리는 동안에도 서로를 보지 못했습니다. 저쪽에서 몇 분이나 예배를 드리러 왔는지 모르고 예배가 끝나야 비로소 서로를 만났습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처럼 들리지요?
    예배실에 들어와서 어떤 자리를 잡는 것이 좋겠습니까? 예배실의 좌석이 부족한 경우 예배 전에 광고하는 경우도 있지요? 앞자리로 당겨 앉으라고 말입니다. 안쪽부터 채워 앉으라고 말입니다. 늦게 오는 분들을 위해 배려하자는 말은 좀 어색합니다.  예전에는 예배가 시작되면 예배실 문을 걸어 잠가버리는 경우도 많았으니 말입니다. 코로나 시대에는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서로간의 거리를 최대한 두고 앉아야 합니다. 거리두기를 위해 ‘이 곳에 앉으십시오’라고 적힌 좌석에 앉아야 합니다. 
    예배실 좌석에 지정석이 있습니까? 교회회원이 아닌 손님석을 따로 마련해야 합니까? 찬양대석과 직분자석을 별도로 가지는 경우는 어떻습니까? 자연스럽게 대부분 여러분의 자리가 정해져 있지요? 늘 앉는 고정자리가 있으니 다른 교인들도 그 자리는 누구 자리다 하는 것을 연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정석처럼 늘 앉던 자리가 있는데 어떤 분이 그것도 모르고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내 자리니까 비켜 달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내 자리라고 쓰여져 있는 것도 아닌데 비켜 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예전에는 예배실 좌석을 돈을 주고 샀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좋은 자리를 돈으로 샀습니다. 여러 사람이 동일한 좌석을 원하면 제일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그 좌석을 차지했습니다. 공연장이나 콘서트 홀에는 무대 가까운 자리일수록 좌석이 비싸지 않습니까? 아무리 비싸더라도 구입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예배실에는 앞자리를 선호하는 분들이 많지 않으니까 오히려 뒷자리가 더 비쌀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예배실 좌석을 돈으로 사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는 말씀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교회 좌석간에 차등이 있었습니다. 신분제가 유지되던 상황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유럽 같은 경우에는 종교개혁 이후에도 교회가 국가교회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예배당에 특별한 좌석들이 있었습니다. 대도시의 거대한 예배당 같은 경우에는 설교단과 마주하는 제일 좋은 자리에 덮개까지 씌워져 있는 화려한 특별석을 만들었습니다. 교인들이 헌금해서 예배당을 지은 것이 아니라 시의회나 정부에서 거액의 예산을 투입해서 교회건물을 지었기 때문에 왕이나 귀족들, 시의회 의원들이 그런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우리교회 예배에 참석하면 어떤 자리에 앉히는 것이 좋겠습니까? 특별한 좌석을 따로 마련해야 할까요? 이후에 개혁한 교회의 예배당에는 점차 좌석의 차등이 없어졌습니다. 예배실 좌석에 차등을 두고, 특별석을 따로 두는 것은 믿음으로 한 형제가 되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직분자들은 예배를 위해 기도하고 강단으로 행진한다

    교인들이 예배당 좌석에 앉았습니다. 그 동안 예배를 인도하는 직분자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배가 시간되기 전에 직분자들이 하는 일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교회역사를 통해 좋은 전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첫째는 예배준비를 위한 기도모임입니다. 신자들이 예배 전에 교제하는 예배 준비실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는데요. 직분자들이 예배를 준비하는 준비실이 따로 있습니다. 목사와 장로의 회, 즉 당회는 공예배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있기에 그들이 따로 모여 예배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핍박당하던 시절에는 이런 순서가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교회가 예배 드리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많았기 때문에 예배가 안전하게 드려지도록 기도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유럽의 어떤 분이 자신의 경험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였는데 예배당 가까운 곳에서 폭탄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나치의 첩자들이 예배에 참석하여 목사가 어떤 설교를 하는지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이때 예배직전에 드린 직분자들의 기도가 예배 인도하는 목사에게 큰 힘이 되었다는 간증이었습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 자신에게도 이 시간이 참으로 위로가 되는 시간일 것입니다. 강단에 오르기 직전이 일주일 중에 제일 긴장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맥박이 빨라지고, 혈압이 오르고, 소변이 마려운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잔뜩 긴장이 되기 때문에 직분자들이 같이 기도하는 것은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기도를 마쳤습니다. 직분자들이 회중석을 가로질러 강단으로 행진합니다. 예전회복을 강조하는 교회들은 이 순서를 강화합니다. 이 행진을 거창한 퍼레이드처럼 행하기도 합니다. 행진하는 이들이 다 예복을 갖추어 입습니다. 목사가 앞장서고, 장로들이 뒤따르고, 찬양대도 그 뒤를 따라서 강단 쪽으로 행진합니다. 강단 앞에서 목사는 등단하고, 장로들은 장로석에 가서 앉고, 찬양대도 별도의 찬양대석에 가서 앉습니다. 그런데 모든 직분자들이 다같이 행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날 예배를 위임한 장로와 예배를 인도할 목사가 교인들이 앉은 좌석을 통과해서 강단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어떤 교회들은 이런 순서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배당 구조상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가 강단 뒤쪽이나 옆쪽에서 불쑥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구조는 신비주의를 조장할 수도 있는데 목사가 예배 직전에 갑자기 나왔다가 예배 후에 갑자기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들은 ‘목사님이 어디서 나왔지?’라고 신기해 할 것입니다. 
    직분자들이 강단으로 행진하는 동안 교인들은 좌석에서 일어서기도 합니다. 왜 교인들이 좌석에서 일어납니까? 그냥 앉아 있으면 안됩니까? 어떤 분들은 이것을 예배의 가장 큰 타락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공식종교가 되면서 황제가 예배실에 들어와서 좌석에 앉을 때까지 교인들이 서서 기다렸던 제국종교의 못된 관습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행진을 하나님께서 직분자들과 함께 예배당에 입장하는 것을 시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실에 입장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예배실에 찾아 오셨기 때문입니다. 직분자들의 행진과 교인들의 일어섬은 예배시작을 위한 하나의 방식일 뿐만 아니라 예배를 인도할 직분자들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직분자들에 대한 인정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 직분자들을 주셨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거리낌없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악수례는 예배인도를 위임하는 절차이다

    이제 예배를 위임할 장로와 예배를 인도할 목사가 한 조가 되어 강단 앞에 섰습니다. 목사가 강단에 올라가기 전에 장로와 악수를 합니다. 이것이 예배 직전에 이루어지는 최종적인 단계입니다. 목사가 그냥 등단하지 않고 장로와 더불어 악수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순회설교자들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그 설교자가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교인들이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당회가 예배 직전에 그 설교자와 악수하므로 설교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온 교회에 알리는 셈입니다. 그런 순회설교자들이 없어진 지 오래인데 이런 해묵은 관습을 지속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런 악수례는 쓸데없는 질문들을 많이 불러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장로가 매 주일마다 목사에게 예배를 인도할 자격을 부여해야 비로소 목사가 강단에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까? 목사는 안수를 받을 때에, 그리고 그 교회를 위임 받았을 때에 계속해서 예배를 인도할 자격을 부여 받은 것이 아닙니까?(장로교회는 목사가 노회를 통해 교회목회를 위임받았기 때문에 예배할 때마다 장로와 악수하므로 예배인도를 위임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혹 장로 중에 목사와 악수하고 싶지 않는 경우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렇게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이 악수례는 예배의 공적인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내기에 저희 교회를 이 순서를 가집니다. 목사는 자신의 개인적인 능력이나 자질을 가지고 강단에 올라가서 원맨쇼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악수례는 목사와 장로가 치리회, 즉 당회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목사와 장로는 예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예배가 잘못되면 그것은 목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장로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목사가 이단적인 설교를 하게 된다면 목사 개인의 큰 잘못이지만 그것은 당회가 책임질 문제이기도 합니다. 목사의 설교를 잘 감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배인도는 목사 개인의 일이 아니기에 목사는 이 악수례를 통해 안심하고 강단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자기 개인의 일이 아니라 오직 위임된 일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의 능력이나 자질에 달린 문제가 아닙니다. 이 악수례를 본 신자들은 이제 더 이상 목사를 목사 개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당회에 맡기신 예배에 대한 책임을 목사가 이중적으로 위임받았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하나님께서 예배를 인도하고 감독할 책임을 맡긴 당회로부터 이 모든 일을 위임받아 수행합니다. 그렇다면 교인들은 더 이상 목사의 실수에 대해 민감하거나 특히 설교의 능력에 목을 맬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배 인도자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복을 받았습니다. 예배는 예배 인도자의 능력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의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예배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 직전에 어떤 일들이 있습니까?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많은 준비와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주보를 보십시오. 주보에는 예배 전에 일어나는 이런 일들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예배순서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예배 전에 이루어지는 이 모든 일들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예배 전에 이루어지는 이 모든 일들은 신자 각자의 경건한 활동의 총합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한 몸임을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예배가 시작될 때에 우리는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직분자들의 준비도 그리스도의 한 몸 됨과 별개의 일이 아닙니다. 신자들은 예배 시작부터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어 하나님께 나아가며, 직분자들은 하나님께 위임 받은 예배인도의 사명을 위해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예배는 나 자신의 개인적인 경건에 달린 문제가 아닙니다. 직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으로 예배할 준비를 잘 갖추었다고 생각하더라도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않으면 결코 잘 준비된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예배인도를 잘하고 설교도 너무나 멋들어지게 하는 목사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당회로부터 예배인도의 사명을 위임 받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예배를 잘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걸 인정하지 않으면 예배 인도자는 강단을 자기 능력을 자랑하는 장으로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예배순서가 잘 짜여 있고 풍성한 볼거리가 있는 예배라고 하더라도 성도들과 더불어 이 모든 것을 하고 있으며, 하나님 앞에서 이 모든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부족한 예배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는 나 자신의 개인적인 경건활동과는 차원을 달리합니다. 우리는 다른 지체들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어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 그리고 제한된 공간에서 개교회 신자들만이 예배하지만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 그 예배는 우주적인 차원을 지닙니다. 
    오늘 본문 시편 22편 27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희생하심으로 형성된 하나님의 회중, 총회, 대회가 온 세상으로 확대될 것을 예언적으로 노래합니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라.”30절로 가면 지금 이 땅에 존재하지 않지만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도 이 대회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제가 어떤 번역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이 몸은 주님 덕분에 살고, 오고 오는 후손들이 그를 섬기며, 그 이름을 세세 대대로 전하리라! 주께서 건져 주신 이 모든 일들을 오고 오는 세대에 일러 주리라!”이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는 우리 자녀들과 더불어 같이 예배합니다. 우리는 지상의 모든 신자들과 더불어 예배합니다. 더 나아가 역사상의 모든 교회와 더불어 예배합니다. 예배실에 앉는 순간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전 역사와 온 우주 가운데로 이끌려 들어갑니다. 
    오늘 둘째본문인 히브리서 기자가 10장에서 기록하고 있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이렇게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담력을 얻었습니다. 나 혼자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 하는 것은 경건회입니다. 하지만 회중 전체가 하나님께 나아가면 그것이 예배입니다. 공예배입니다. 코로나 시대에 여러 가지 제약이 많지만 우리는 함께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이들과 같이 하지 말고 더욱 모이기를 힘쓰라는 것은 초대교회의 핍박받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외부적인 그 어떤 핍박이 아니라, 코로나라는 상황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예배하기를 폐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한번도 빠뜨리지 않고 예배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중에 속해서 예배한 것이 아니라 회중속에서 나 홀로 있었다면 그것은 제대로 예배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도 예배는 함께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이 되었지만 예배로 모이는 것이 시들해지고 별 감흥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배 직전에 서로를 미쳐 보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서로를 바라보십시오. 홀로 외롭게 앉아 있지 마십시오. 예배하는 순간에도 홀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 예배는 나와 하나님의 일대일 관계이다’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예배당에 와서도 외롭고, 예배하면서도 외롭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감격스럽지 않습니까? 나와 똑같이 부름받고, 이 세상에서 똑같이 고난받은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예배하는 자리에 앉는 순간 우리는 세상과 구별될 뿐만 아니라 지상과 하늘을 포함한 모든 성도들과의 교제 가운데로 편입됩니다. 예배는 우주적인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함께 합니다. 우리가 구약과 신약의 모든 교회, 더 나아가 하늘나라에 가 있는 천상의 교회와 더불어 하나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래도 외롭다고 하겠습니까? 예배의 의미를 아는 신자는 모든 외로움을 떨쳐 버리고 힘있게 일어설 수 있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일을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성도들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어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게 하심을 감사 드립니다. 코로나로 인해 가정에서 경건회를 하더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속해서 예배하고, 경건회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도와 주옵소서. 우리 속에서 나온 열정과 신심이 아니라 위로부터 내려주신 성령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저희 교회가 되도록 도와 주옵소서. 토요일부터 주일을 준비하고 주일이 되어 교회로 올 때 우리는 세상과 구별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도장이 찍히는 것임을 생각할 때에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형제 자매들과 더불어 모든 것을 함께 하는 자들로 부름 받았음을 감사 드립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들과 더불어 모든 것을 함께 하도록 부름 받았음을 감사 드립니다. 예배하는 자리에 앉는 순간 우리는 역사상의 모든 성도와 교회와 하나되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은혜를 받게 됨을 감사 드리며 이 은혜가 하늘나라에까지 이어지게 하옵소서. 성도들 가운데 한 사람도 이 영광에서 제외되지 않도록 도와 주옵소서. 예배의 우주적인 중요성을 알아 예배할 때 모든 고통과 외로움과 연약함이 물러가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몸이 이 세상 속에 우뚝 서고 나타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 되고, 성도들이 세상의 위로가 되게 하옵소서. 외롭게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게 하시고, 성도의 교제인 온 우주적인 교통을 즐기는 주의 백성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예배를 친히 인도하시고 우주적인 교통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 묵상하고 나누기

1. 주일 아침 가정에서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2. 집에서 온라인예배, 비대면예배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습니까?

3. 예배당 좌석에 앉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예배당 좌석간에 차별이 있습니까?

4. 직분자들이 예배 전에 기도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5. 목사와 장로의 입장과 악수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6. 신자는 예배시작부터 모든 것을 같이 한다는 것을 묵상해 봅시다.

7. 공예배의 우주적인 중요성을 알고 삶에서 그 풍성함을 누리도록 기도합시다.


어린이를 위한 질문

1. 주일에 예배당 좌석 아무 곳에나 앉아도 된다, 맞습니까? 

2. 목사와 장로는 서로 친하다는 표시로 악수를 한다, 맞습니까?

3. 회중과 직분자는 예배 시작부터 그리스도의 (    )을 이루어 하나님께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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