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 우편에 서신 예수님을 보는 스데반.(행 67:54-60)

삼위일체 주일(5월 30일)

개혁주의교회 건설을 위한 이단경계주일(6월 6일)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충만하게 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게 합니다.

오늘 6월 6일은 우리 고신교회가 다 함께 <개혁주의 교회 건설을 위한 이단 경계주일>로 지킵니다. 이단은 사람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구원에 대해 합리적으로 말합니다. 성경은 사람의 생각을 너머서 하나님을 삼위 하나님으로 계시합니다. 오늘은 삼위 하나님에 대한 바른 고백이 얼마나 큰 유익이 있는 지 말씀을 들읍시다.

또 5월 30일 주일은 오래 전부터 교회가 지켜 오던 성령강림주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그리고 구약시대에도 삼위 일체로 계셨습니다. 아들 사람이 사람이 되셔서 세상에 오시고, 부활승천하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 하나님을 받아 교회로 보내 주시면서 하나님은 자신을 삼위 일체이심을 더 분명히 나타내셨습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7:54-60에서 

성령 하나님은 순교하는 스데반을 충만하게 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게 합니다.

1. 삼위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스데반은 삼위 일체 하나님을  증거합니다.(54-56절)

2. 삼위 하나님 안에서 스데반은 순교하며 기도합니다(57-81)

3. 삼위 하나님 보는 것은 우리 모든 성도의 축복과 의무입니다. 

우리도 스데반에게 나타나신 삼위 일체이심은 배울 뿐 아니라 우리의 직분을 다할 때 실제로 험하게 해 주시기 소원합니다.


1. 삼위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스데반은 삼위 일체 하나님을 증거합니다.(54-56절)

1) 이를 가는 핍박자들(54절)

1) 스데반은 일곱 집사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하여 구제하는 일을 했습니다. 또 기적을 행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성령님과 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6:10). 회당에 있던 유대인들은 그의 말을 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스데반을 유대인의 국회인 산헤드린 공회에 고소했습니다. 

그들은 거짓 증인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와 하나님을 모독했다. 율법과 성전을 모독했다. 나사렛 예수는 율법을 고치고 성전을 파괴한다고 말했다.”스데반은 7장에서 변호했습니다. 과거 구약의 조상들의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 한 곳에 계신 분이 아니라, 조상들이 가는 곳마다 항상 함께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조상들이 모세와 같은 하나님의 직분자를 핍박했던 역사를 말했습니다.  7:51,53“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린다. 너희는 그 의인(예수 그리스도)를 잡아 준 자요 살인자들이다. 율법을 지키기 않았다.”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마음이 쪼개지는 듯이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분을 이기지 못해서 살기가 등등하여 이를 갈고 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에 방청객들은 그의 말에 제대로 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입니다. “너희들이 회당과 공회에 끌려 가고 채찍으로 맞을 것이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할지 염려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리라”(마태복음 10:17, 20). 

➞ 지금도 우리가 복음을 증거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염려하지 말고 복음을 전합시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갈 때 불신자들 앞에서 할 말을 성령님께서 주십니다.


2) 삼위 하나님의 나타나심: 서 계신 예수님(55-56절)

1) 반대자의 분노 앞에서 성령님께서는 스데반 안에 더 충만하게 오셨습니다. 그는 성령님의 인도로 하늘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주여 저를 굽어 살펴 주소서”라 기도한 것 같습니다. 그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오른 편에 서 있는 자신을 보여 주셨습니다. 12사도들도 보지 못한 영광스러운 장면을 스데반에게 먼저 보여 주셨습니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 하나님은 자신이 삼위 되심을 환히 나타나셨습니다. 

➞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복음을 전하고 살아 가다가, 고난을 받는다면 성령님께서 우리를 충만하게 하십니다. 고난 받을 때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마음을 짓누릅니까? 기도하며 하늘을 향해 눈을 돌립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그리스도를 보게 하실 것입니다.

2) 예수님은 놀랍게도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계셨습니다.”예수님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눅 22:69, 마 26:64).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고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왜 서 계셨을까요? 첫째로 예수님은 하늘의 법정에서 하나님 앞에 서셔서 스데반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스데반. 땅에서 사람들이 스데반을 너를 악하다고 정죄하고 있다. 그러나 하늘의 대법원에서 내가 하나님 앞에서 너를 변호하고 있다. 하나님은 네가 옳다고 판결하셨다.”

둘째 예수님은 하늘에 서서 스데반을 환영합니다. “내가 십자가에 죽었으나 부활하여 하늘의 영광 가운데 있다. 나를 위해 고난받으며 죽어가는 너는 내가 있는 하늘의 영광으로 들어오너라.”이 고난의 순간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스데반을 만나 주시고 있습니다. 위로하고 있습니다.

➞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고난 받을 때, 하늘에서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옳다 인정해 주십니다. 어려움 가운데서 예배하는 우리를 환영하십니다.  순교의 고난이 아니어도 직분을 다하기 위해 수고할 때마다 우리 예수님은 하늘에서 우리를 응원하십니다. 자매님들이 가정에서 직분을 다할 때 예수님께서 하늘에 서서 응원하십시다. 우리 직장에서, 학교에서 직분을 다할 때 수고가 있고 고난이 있을 기도하며 하늘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사명을 다하다 죽으면 환영해 주시는데, 수고하며 고생할 때 걱정하지 맙시다.


3) 스데반의 증거 (56절)

스데반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삼위 하나님을 계속 증거합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예수님을 “인자”라고 증거합니다. “인자”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냥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그 사람의 아들(그 인자)”입니다.“그 인자”는 다니엘서 7:13,14에서 예언된 분입니다.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전에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님도 자신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는 인자”라고 증거했습니다(마태복음 26:64).자기를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고,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죄로 죽임에 넘겨 졌습니다. 자신을 단순히 메시야=그리스도라고만 했으면 신성모독의 죄를 지었다고 정죄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데반도 예수님이 바로 그 인자라고 증언했습니다.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 예수가 인자로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있다고 말하다니!”

스데반의 말은 그들의 분노의 불에 기름을 뿌렸습니다. 그들은 귀를 막았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계속 말합니다. 자기가 본 삼위 하나님을 증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 우리가 복음을 증거할 때 사람들이 귀를 막을 수 있습니다. 소리치며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배워서 알고 있는 이 진리를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친구, 학교 친구, 직장 동료들이 싫어해도 그들이 죄에서 벗어날 길은 이 길 밖에 없으니 증거합니다.


2. 삼위 하나님 안에서 스데반은 순교하며 기도합니다(57-81)

1) 사단에 사로잡혀 스데반에게 달려 가는 핍박자(67절)

그들은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일제히 스데반에게 달려 들었습니다. 전에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 내었을 때 귀신들은 돼지 떼에 들어 가서 돼지들이 호수로 달려가게 했습니다(눅 8:33). 죽였습니다. 이제고 그들은 귀신이 들려서 난폭하게 되어 스데반에게 달려 왔습니다. 

일제히’(한 마음으로)스데반에게 달려 들었습니다. 전에 제자들은 성령님이 오시기를 ‘한 마음으로’기도했습니다(1:14). 핍박 가운데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해 달라고 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4:24). 성령님으로 충만해 졌습니다. 교회가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갈 때, 악한 자들도 한 마음이 되어 악한 일을 합니다. 그들은 스데반을 성 바깥으로 끌어 내 돌로 쳐 죽이고 있었습니다. 

➞ 우리가 말로서, 행동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사단은 자기 부하들을 더 조직적으로 모읍니다. 복음에 순종하는 삶에 대해 반대가 극심하게 일어날 때 오히려 기뻐합시다.


2) 성령안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기도하는 스데반(59-60절)

1) 돌이 소나기 처럼 오고 있고 온 몸이 피범벅으로 되어 갑니다. “주 예수여”(58절). 그 때 스데반은 부르짖었습니다. 그냥 소리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당신은 하나님입니다”예수님은 몸을 가진 하나님이며 사람으로서 자신을 보여 주시고 성령님을 통해 계시하셔서 스데반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 주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고난받을 때, 주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 되심을 더 분명히 알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더 큰 믿음을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 다스리신다는 이 확신이 어떤 고난도 이기게 합니다.

2) 스데반은 돌에 맞고 있으면서 계속 두 개의 기도를 합니다.

첫번째 기도.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59절). 자기 영혼을 위한 믿음의 기도입니다. 부서져 죽어 가는 자기 생명을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께 맡깁니다. 우리 모두도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 져 있습니다”골 3:3). 그는 이 순간만 자기 영혼을 주님께 맡긴 것은 아닙니다. 평소에도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 고백했을 것입니다.

➞ 우리도 평소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기도하며 자신의 삶을 맡길 때, 위기의 순간에 더 평안하게 맡길 수 있습니다. 작은 일에서 주님께서 보호하실 것을 믿고 순종할 때, 큰 일에서도 주님의 보호를 믿고 의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스데반의 두 번째 기도.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60절, 눅 23:34). 이웃사랑에 관한 기도입니다. 그는 자기 생명을 위해서는 크게 소리치지 않고 조용히 기도하며 주님께 맡겼습니다. 그러나 분노하며 소리치는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스데반은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57절에 군중들이 “큰 소리를 질렀다”와 같은 말입니다. 그들의 분노의 소리를 감싸는 사랑의 부르짖음을 하나님께 올렸습니다. 

➞ 우리는 자신이 당한 고통과 손해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크게 소리치며 기도하면서, 이웃의 구원을 위해서는 작은 소리로 기도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령 안에서 스데반과 같이 기도합시다. 우리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문제 우리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믿음으로 맡깁시다. 가족과 이웃의 구원을 위해서는 간절히 부르짖읍시다.

3)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소서.”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이면서 사람을 향한 복음전도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나를 죽이는 여러분은 큰 죄를 짓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면 큰 심판을 당합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심판하시는 권세가 있습니다.  회개하고 나올 때 예수님께서 용서하십니다. 나도 이미 여러분의 죄를 용서했습니다.”평소에 그는 고통을 주는 사람을 위해 사랑으로 기도했기에 순교의 순간에 기도합니다.

➞ 우리도 평소에 우리에게 죄를 짓고 피해를 준 사람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예수님께 기도합시다. 그러면 더 큰 피해를 당해도 분노하지 않고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 바른 기도를 드린 것은 삼위 하나님이 주신 은혜였습니다. “성령님이 충만하여”“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주 예수께”기도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로 아들 하나님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로마서 8:26은 말합니다.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사람의 말이 아닌)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3) 열매 1:  증인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하면서 하늘나라로

삼위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삼위 하나님을 증거하며 삼위 하나님 안에서 기도한 스데반은 두가지 열매를 맺습니다.

1) 첫째, 스데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점점 변합니다.

스데반의 두 개의 기도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기도와 같은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쓴 누가는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올리신 두 개의 기도를 전해 줍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맡겨드립니다”(누가복음 23:46).

“아버지 그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다”(누가복음 23:34).

예수님의 기도와 스데반의 기도의 차이는 기도의 대상의 차이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드린 기도를 스데반은 주 예수님께 드립니다.

2) 회당에서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할 때 이미 그의 얼굴은 천사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6:15). 그리스도깨서 가신 고난의 죽음의 길을 따라가면서 그는 더욱 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광 가운데 그의 영혼은 삼위 하나님께서 계신 하늘로 들어 가서 영원한 행복을 누립니다.

➞ 우리도 복음을 증거하다가 고난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말씀을 전하고 순종하며 살다가 우리의 고난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은 우리를 주님과 같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시킵니다. 우리 삶을 주님께 맡기고 산다면, 주님처럼 원수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이 클수록 축복이 됩니다.


4) 열매 2: 또 다른 증인 사도 바울(58, 8:1)

순교하는 스데반의 두 번째 열매는 복음 전도자 바울을 얻은 것입니다. 하늘에 서 계신 그리스도께서는 스데반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 주동자였던 청년 사울(바울, 사울은 히브리어로 발음, 사울은 헬라어 발음)을(58절) 예수님께서 복음 전도자로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이 스데반을 죽인 죄를 바울에게 돌리지 않았습니다. 용서하셨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스데반을 죽인 것을 기억하며 회개했습니다(행 22:20, 26:10). 바울은 자기가 스데반을 죽인 것을 계속 마음에 기억하며 스데반처럼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스데반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복음을 증거하고 복음을 위해 살 때, 우리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3. 삼위 하나님 보는 것은 우리 모든 성도의 축복과 의무입니다. 

스데반이 경험한 삼위 하나님의 복은 우리 모든 성도가 누리는 복입니다.


1) 사도 요한: 하늘이 열림, 성령님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을 봄

요한계시록 4장에서 사도 요한도 이 복을 받았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목회하다가 섬에 추방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 하늘이 열리고 삼위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보좌가 놓여 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계 4:1,2) 

 “한 어린 양이 섰는데”(계 5:6)

사도 요한도 성령님 안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서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때로는 순교한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도 주님이 나를 환영하신다는 이 믿음으로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박해하던 일본 경찰에게 욕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2) 삼위 하나님 보며 천국가는 성도: 말씀, 기도와 찬양, 순종과 증거

우리는 이 땅에서 동안 스데반이나 요한처럼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스데반이나 사도 요한 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삼위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나 요한은 모든 교회를 위해 삼위 하나님을 보았고 말씀으로 기록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삼위 하나님을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믿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땅의 생명이 끝날 때 우리도 즉시 삼위 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생생하게 볼 것입니다.

이 복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 성령님께서는 예배에서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기도와 찬송가운데 성령님이 우리를 충만하게 하십니다. 

교회가 함께 예배하며 성령님을 간구할 때 충만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증거할 때 성령님이 충만하게 하십니다.

삼위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말씀, 기도와 찬양, 순종과 증거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3) 이단들: 이 땅에서 하나님을 눈으로 본다고 말하는 자들,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하는 자들

이단들은 이 땅에서 스데반이나 요한 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눈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복된 계시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사람의 생각대로 더하거나 뺍니다. 

요한계시록 22:7은 말합니다.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요한계시록 22:18,19는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예언의 말씀에 “더하는 자에게는 재양을 더하고”“제하는 자에게는 거룩한 성에 참여하는 것을 제한다”고 하십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신 이 성경 말씀에 더하거나 빼지 맙시다. 하나님 말씀을 주의깊고 신중하게 배웁시다. 이런 이단들을 경계합시다. 말씀으로 만족합시다.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성경에서 삼위 일체로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삼위로 고백하고, 말과 행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일에 반드시 고난이 있습니다. 그 고난 가운데 하늘을 바라보며 주 예수님의 도움을 의지하며 살아갑시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우리 마음에 나타내 주십니다.

평소에 기도합시다. “내 영혼을 맡깁니다. 내 영혼을 받아 주소서”믿음으로 기도합시다. 나에게 힘든 일, 고통을 주는 사람에게 평소에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그 죄를 그들에게 서게 하지 마소서.”그러면 더 큰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과 사랑이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삼위 하나님으로 배우고, 삼위 하나님께 기도하며, 삼위 하나님 주시는 큰 위로가 넘치기 축복합니다. 

개역 개정

사역

54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이 말을 하고 자니라

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54 그런데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있으면서  그들의 마음에 찔리고 있었고 그에게 이를 갈고 있었다.

 55 그러나 그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있으면서 하늘을 하늘을 응시한 다음에 하나님영광과,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서 있어 온 예수를 보았다. 

 56 그리고 말했다. 

“보라, 보라 열려져 온 하늘과,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있어 온 그 인자(사람의 아들)을 나는 보고 있다.”

57 그러나 그들은 큰 소리로 부르짖고는 그들의 귀를 막고 있었고 한 마음으로 달려 갔다.

58 그리고 그  성 바깥으로 내친 다음에  돌로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증인들은 그들의 옷을 벗어서 사울이라는 한 청년의 발 앞에 두었다.

 59 그리고 그들이 스데반을 돌로 치고 있는 동안, 그는 가    

   주님 예수여, 내  영혼을 받아 주소서”

라고 부르면서 말하고 있다.

60 그런데  그는 무릎을 꿇은 다음에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주님,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서게 하지)  마소서”

그리고 이것을 말한 다음에  잠들었다.

8:1 그런데 사울은 그의 처형에  동의하고 있었다.


<주석>


1. 그들은 이를 갈고 있었고 스데반은 하나님 영광과  오른 편에 서신 예수님을 보고 그렇게 말함(54-56절)

     1) 그들은 마음이 찔러 이를 갈고 있었다(54절)

     2) 스데반 성령 충만, 하나님 영광, 그 오른편에 선 예수를 보았고, 보고 있다고 말함(55,56)

2. 그들은 돌로 치고 있었고, 스데반은 자기 영혼을 받아 달라고 하며, 그들의 죄용서를 구함(57-8:1)

    1) 그들은 달려 가 스데반을 돌로 침(57, 58절)

    2) 스데반이 주님께 한  두 마디 말: 자기 위해 내 영혼을 받아 주소서, 핍박자위해 죄용서하소서

    3) 바울: 증인들의 옷을 맡음, 스데반의 처형에 동의 (58, 8:1)

대지: 스데반은 그리스도를 보면서 그리스도에게 영혼을 맡기고 대적들을 용서하며 순교했다.

상황: 많은 고난, 핍박, 복음으로 인한 핍박

목적: 핍박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임재함으로 사랑과 평화 가운데 죽을 수 있다.

교회상황

-성도들도 많은 고난 가운데 있다. 

-믿음의 길에 고난.

-고난 당할 때 하늘을 보라 보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

목적: 고난 당할 때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본다는 확신가운데서 고난을 두려워 하지 않고 증인의 삶을 살도록

대지: 예수위해 고난을 때 예수의 영광을 보고 기도하는 특권이 있다.


<적용>

스데반의 순교, 증거를 위한 순교

-성도들도 증거자로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산다.

-반드시 이런 갈등이 있고, 순교해야 좋은 그리스도인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순교적 자세가 필요하다. 세속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 계명을 따라 절대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1) 자기 정체성-믿음: 우선 순위 유지-마음에 하나님과 관계 순결

2)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동

3) 사람들에게 영향을 줌

4) 의견 차이: 지혜로운 다이어로그

5) 담대하라: 할 말을, 해야 할 말이면 다 하라. 침묵이 지혜로우면 침묵하라.

해야 할 말을 다 하다 실패? 오해? 손해.

주님께 영혼을 맡겨라.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라.


54절, 양심의 가책, 이를 감

칼빈: 사단이 말씀의 적들을 일으킨다.

양심이 찔림을 칼빈은 그들이 화날 뿐  아니라 광란에 사로잡혔다로 해석, Calvin, 311.

하나님의 버림받은 자는 사단의 명령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렇게 움직인다, Calvin, 311,2

전에 부드러워 보이는 위선자들을 말씀이 이렇게 움직인다. 술취하듯이 잠자는 자들을 깨어나게 한다(악한 자들을 의미: 번역자). 시몬이 말하듯이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드러낸다(눅 2:35).  구원의 말씀은 사람을 하나님께 복종하게 하는 본질적인 기능이 있지만, 사단이 그들을 붙잡자 마자 이런 비본절적인 결과(혹은 부수적인 accidental)를 낳는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우리는 이 예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사람을 건전한 마음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됨을 배워야 한다.

이 가르침은 우리가 견고하게 되는 데 아주 필요하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와 부딛치지 않고는 그들이 해야 할 임무를 다할 수 없다.  스데반과 같은 열정으로 전할 때 그것은 악한 자들의 불에 기름을 붇는 격이 된다. 그들이 지옥의 격분을 쏟아 붓는다 해도 우리는 그들을 강력히 부수어야 한다. 악한 자에게 아부하는 자는 그들의(악한 자를 말함: 번역자) 유익을 위하지 않고 , 위험을 두려워 하여 마음이 기진해 진 것이다. 그 열매를 거두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우리가 원하는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하더라도 경건의 가르침을 선포하는 용기는 하나님 앞에 좋은 향기를 내는 제물임을 알아야 한다. , Calvin, 312.

그들의 양심이 찔림: 내가 항상 말했듯이, 나쁜 일 하면 나쁜 일 만난다. 스데반은 그들을 비난하지 않았지만 증명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정결한 양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로 인해 수치를 당해도, 그것 때문에 나쁜 것이 없다. 스데반이 그들의 화를 돋군 것이 아니라, 선지가(그 선지자: 예수?)께서 그들을 고소했다, Chrysostim,  112.


diaprinw di-airew)(2/2): 


5:33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 때

prizw- 히11:37 쪼갬(톱으로)- 앞선 순교자들의 몸을 고문했듯이 그들의 마음이 고문당함, 대답할 수 없으니까 분노로 가득참, 슬픔으로 마음이 찔리는 것이 아니라 (2:37처럼), 그러나 분노와 불타는 분노로 마음이 잘라짐, 5:33, Andrew Murray, I.1

복음을 배척하고 반대하는 자들은 자기가 자신들을 고문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향한 적대감은 가슴을 자르는 것이다. 믿음과 사랑이 가슴을 치유한다, Andrew Murray, I.1

이를 간 것. 적대감의 표시. 또한 저주받아 지옥에 있는 자들이 하는 것. 지옥의 악을 가진 그들은 그것과 함께 지옥의 고통의 얼마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 Andrew Murray, I.2 . (필자: 정말 그렇다. 악인은 다른 사람을 향해 독을 품어내기 위해 자기 마음에 먼저 독이 돌게 한다.)

분노의 표시(시편 35:16 그들은 나를 향해 이를 감. 참고 눅 13:28 쫓겨난 자가 이를 감 . 5:33에서도 산헤드린 공회는 분노, I Howard Marshall, 148 

그들은 스데반의 말을 들으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분노하며 이를 갈았습니다,  (필자)

스데반이 하던 이야기가 그들에 대한 정죄로 이어지자, 분노, F. F. Bruce, 153


55절,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오른 편에 서 있어온 예수를 봄

킬빈: 거짓 고소와 폭력으로 둘러 싸여서 구원과 평안을 어디서도 얻을 수 없을 때 그는 하늘을  바라 보았다. 산자와 죽은 자의 하나님을 바라 보았다.

그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늘을 보았다. 그리스도로 부터 용기를 얻기 위해서. 그래서 죽으면서 그는 승리하고, 죽음을 극복했다. 우리들은 땅에 너무나 붙어 있으므로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우리는 조금만 위험의 소문이  나도, 잎새 떨어지는 소리에도 겁을 낸다. 우리는 하늘을 간과한다.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다.  스데반은 성령으로 충만했기에 하늘을 바라 볼 수 있었다. 우리도 어려움으로 억압당할 때 마다 우리도 성령님을 우리의 인도자로 삼아서 하늘로 올라가야 한다, Calvin, 313.

우리도 세상을 버리고 우리 감각이 그 분을 향하여 가면 그 분은 스데반보다 적지 않게, 우리에게 임재해 계신다. 스데반에게 처럼 보이게 나타나지 않아도, 우리의 마음에 그 분의 임재를 느끼게 한다(eius praeenttiam vere sentiamus).  그 분의 능력과 은혜로 가까이 계심을 선언할 뿐 아니라, 그 분이 우리 안에 거주하심을 증거한다 , Calvin, 314

크리소스톰: 스데반은 예수님의 죽음까지 밖에 말하지 못했다. 부활을 말할 수 있도록 이 기적을 보여 주심, hrysostom, 113.

스데반에게 있는 은혜의 힘,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그 안에서 일하심. 사단으로 충만한 자들이그를 공격할 때 그를 보통 때 보다 더 성령으로 충만케 하신다.

벧전 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 그리스도의 일을 하도록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게 한다. 이 결정적 순간에 이 복된 순교자와 복된 예수님이 교통이 일어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그 분을 위하여 온 종일 살육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는다고, 이것이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겠는가(로마서 8장)? 그 분이 그들을 적게 사랑하는가? 그들이 그 분을 적게 사랑하는가? 아니다. 전혀 아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그렇게 보인다, Matthew Henry, II.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로하고 높이기 위해 나타나셨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그를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것은 그를 격려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고난 받는 종을 지원하고 위로하기 위해서다  , Matthew Henry, II.1.


하늘을 응시하여 바라 봄: 그는 박해자들 너머를 바라 보았다. 말하자면 그들을 멸시하고 시온의 딸들처럼 그들에 대해 웃고 멸시했다. 사  37:22 여호와께서 그(앗수르 산헤립)에게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조소하였고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그는 도망하기 위해 주위를 보지 않았다. 열린 하늘을 향항여 보았다. 그들은 그가 하나님과 하늘과 교제하는 것을 방해할 수 없었다, Matthew Henry, II.1.1

이리하여 그는 자신의 고난을 하나님의 영광, 그리스도의 영예를 향했다. 말하자면 이렇게 기도하는 것 같았다. 주님, 당신을 위해 나는 이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을 통해 높아지기를 기도했다(빌 1장). 하나님께서는 그 분을 위해 고난받는 자를 돕겠다고 약속했지만,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약 5:13) 

그래서 그는 그의 박해자들이 지금 그를 보내고 있는 하늘 나라를 향해 숨을 쉬었다.  죽어 가는 성도는 하늘을 향해 보는 것은 유익하다. 사망하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

성령님이 충말한 때하늘을 바라 본다. 우리도 하늘로부터 듣기를기대하면, 하늘을 향해 계속 쳐다 보아야 한다., Matthew Henry, II.1.1 

하늘이 열렸다. 그가 향해 가고 있는 행복을 봄으로써 지금 격고 있는 잔인한 죽음을 견디기 위해.  우리도 하늘을 바라본다면 그리스도의 중보에 의해 하늘의 베일이 열린 것을 볼 것이다. 우리가 지성소로  들어가도록 열린 새 길을 불 것이다(히브리서 9장). 하나님과 우리가 교통하기 위해 하늘이 열린다.  이것이  우리는 모든 고난들과 죽음의의 두려움들을 지나가게 할 것이다, Matthew Henry, II.1.2

그의 기대는 헛되지 않았다. 하나님게서 나타나셨다. 하나님을 가리고 있는 영광의 구름과 예수 그리스도, 스데반은 성령충만한 사람이었지만 그 때 하늘의 비전을 볼 수 있도록 특별히 성령님으로 충만, I Howard Marshall, 148 

스데반은 그의 재판자들의 엄청난 광분 앞에서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예수님이 계시고 하나님께서 앉아 게신 비전을 보고 힘을 얻었다. , Willian  Neil,

스데반은 분노로 일그러진 그들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하나님 오른편에 서 계신 예수님믈 보았다. 우리는 그의 용기의 비밀을 본다. 그의 비밀은, 사람들이 그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너머서 주님의 환영하심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 증인./순교자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보좌로 들어가는 문으로 보았다

역사의 모든 교훈은 그리스도의 길을 온전히 따르는 사람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발견할 것이다. 스데반에게는 그 모든 두려운 혼돈이 이상한 평화로 끝났다. 옳은 일이 그를 죽여도 옳은 일을 한 사람에게 오는 평화., William Barclay, 62.


56절 인자를  보고 있다.

환영.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듯이, 그 분을 따르는 자들또한 그럴 것이다. , I Howard Marshall, 149

 인자를 본다.  그는 그분을 심관 받고 하나님에 의해 옳다 인정받은 인자(눅 9:22,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 그리스도인 순교자들이 따라야 할 페턴으로 본다. 또한  예수님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사람 앞에서 그 분에 대한 그들의 충성을 인정한 사람들을  옳다 인정할 분으로 본다(눅 12:8) , I Howard Marshall, 149

예수님도 심문 당할 때, 그냥 메시야라고만 말했으면 사형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음, 그러나 그 분은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것과 구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 (막 16:42), 그래서 거짓말이며 모독적인 말을 했다고 고소당함. 스데반도 같은 말을 함, 신성모독의 혐의, F. F. Bruce, 154.

필자: 성도의 신앙이 세상을 격분시킨다.

인자  복음서 바깥에  여기서만 나타난다. . 

원래 단 7:13,14에서 인자 같은 하나님 앞으로 구름 타고 오는 것. 아무도 이 호칭을 쓰지 않았다. 예수님은 이 호칭을 스스로 쓰면서 원하시는 대로 그 의미를 넣을 수 있었다.  시편 110:1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도록 초대받는 것과 연결, F. F. Bruce, 154,5

하늘에 계신 인자를 본다 할 때 큰 소리 외침 종종 그리스도의 경건을 위한 의로운 의제cause는 소음과 함성을 만나게 된다, Andrew Murray


55절 서계신 예수 그리스도

칼빈: 어거스틴은 '앉은 것은 심판자, 선 것은 변호자'라고 말하지만, 칼빈은 앉고 섬은 메타포로 봄. 하나님은 온 땅을 충만하게 하시는 데 오른 쪽 왼쪽이 없다. 단지 그리스도에게는 육체를 가진 상태에서 다스림의 권세가 주어진 것이다, Calvin, 315.

그리스도의 몸이 온  땅에 있다는 것은 잘못. 그 분의 몸은 하늘에 있으면서 능력이 온 세상에 미침, Calvin, 315,6.

그리스도께서 스데반에게 가까이 왔다는 어떤 사람의 주장은 의미 없음. 왜냐하면 그의 눈이 열렸기 때문, Calvin, 316.

선다에 대한 관점 

1) 의미 없다.   

2) 왕으로 다스려 심판하기 전에 기회를 준다  

3) 첫 순교자를 환영하기 위해 

 4)  개인 성도가 재림을 미리 봄.

브루스의 생각-스데반을 변호- 나를 사람 앞에서 시인하면 인자다 하나님의 천사 앞에서 시인(눅 12:8, 마 103). 스데반은 땅의 법정의 adverse 심판으로부터 호소하고 있고 '하늘의 법정에서 인자의 공동체의 이 회원은 이미 그 공동체의 머리-빼어난 인자-에 의해 이미 옳다고 선언되었다'(C. F. Moule). 이 복된 비전을 뭔가 미리 보니까 그는 증언을 시작할 때 이미 천사처럼 빛남(6:14) , F. F. Bruce, 156

5)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않은 것은 성전 보다 더 직접적이고 가슴을 만족시키는 접근이 가능하다는 의미, 유대의 특수한 민족주의적인 것이 사라지고 민족과 종족이 차이가 없는 새 시대가 열림을 의미, F. F. Bruce, 157

서 계신 것은 하나님 앞에서 스데반을 변호, 그리고 스데만을 환영.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듯이, 그 분을 따르는 자들또한 그럴 것이다. , I Howard Marshall, 1490

서 계신 것은 스데반을 환영.

한편, 다니엘 7:13-14에서 인자 같은 이에게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예수는 단지 유대인의 메시야가 아니라 인류의 보편 구원자라는 뜻이 아닌가? 유대인의 정태적인 유산을 뒤로 하고 이스라엘이 전에 했듯이 순례하는 백성이 되어라는 뜻,  모든 민족에게 진리를 전하는 메신저들이 되는 것, Willian  Neil, 117.

(저자-이 해석은 전체 맥락에서는 의미 있다. 그러나 서계시다는 것 그 자체로서는 그런 의미를 가지지 않는 듯하다.)

구약에는 쉐키나 혹은 하나님의 임재 주위에는 천사들이 있었다(사 6장). 그런데 이제는 그리스도가 서 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리스도에게 가장 빛난다. 

사도들은 예수님 승천하는 것은 보았지만 하나님 우편에 계신 것은 보지 못했다. 스데반은 보고 큰 만족을 얻었다. 몸을 가진 그리스도는 육체의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하나님 오른 편의 그리스도: 그 분의 초월적 위엄과 그 분의 주권적 다스림, 그 분의 통제할 수 없는 능력과 그 분의 보편적 agent 하나님께서 오른 손으로 주시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다, Matthew Henry, II.1.3

서계신 것: 보통과 다르게 현재의 그 분의 고난받는 종에 관심. 그의 박해자들에게 대항하여 그의 고소건을 plead 탄원하는 재판관으로 그 분은 그를 받아 들여 관을 쒸울 준비하고 서 있다. 또 그 때까지 그에게 그의 앞에 놓인 즐거움의 전망을 주신다.

겟세마네에서 주님 기도하실 때 천사들이 도우셨다. 그러나 스데반은 그리스도께서 도우신다.  고난 받는 성도에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 만큼 위로 되는 것이 없다. 복된 하나님, 우리가 믿음으로 그 분이 거기 계신 것을 보게 하소서 , Matthew Henry, II.1.3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보았습니다.성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성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셔서 계셨습니다.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스데반, 네가 땅의 법정에서 나를 위해 혼자 서서 복음을 변호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하늘의 법정에서 너를 위해 서서 변호하고 있다. 네가 쓰러질 때 나는 하늘에 서서 너를 환영한다 스데반을 변호하고 인정하는 분으로 나타났습니다55절,순교의 길을 가면서 스데반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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