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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종인 공직자에게 복종하라(로마서 13:1-7)

2021-7월, 고신 모범설교문


국가와 공직자는 하나님의 정의로운 질서를 세우는 종/직분자이기 때문에 성도는 국가와 공직자에 굴복합니다.

내년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은 후보자를 선택하기 위한 경선을 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선거에 대해서, 정치과 국가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어느 어떤 후보에게 투표할 지를 직접적으로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국가와 공직자에 대한 가르침을 마음에 간직하고 기도할 하나님은 투표에 대해서도 마음을 인도합니다. 

로마서는 국가에 굴복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네로 황제 (54-68년)때 말씀입니다. 군주가 다스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를 위한 복된 말씀, 계시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일반 상식으로 없는 하나님의 뜻을 말해 줍니다. 

지금도 그리스도인은 국가의 통치를 받으면서 복종합니다. 우리 시대, 참여 민주주의 시대에 성도는 시민의 사람으로서 투표를 합니다. 직접 정치에 참여합니다. 통치에 참여합니다. 국가의 법질서의 다스림을 받을 때도, 참여할 때도 계시의 말씀을 마음에 붙잡읍시다. 국가와 공직자는 자기 권력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유권자로서 그냥 아무에게나 투표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해 우리는 국가에 굴복하고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은 성도가 교회를 세우고 서로 사랑하도록 돕기 위해 국가와 정치를 세우셨다.

2. 국가와 공직자는 하나님이 임명했기에 성도는 복종해야 한다(1-2절).

3. 공직자의 사명: 하나님의 종으로 선한 일을 상주고 악한 일을 벌주어 정의를 세운다(3-5절).

4. 국민의 의무: 공직자를 하나님의 거룩한 일꾼으로 인정하고 세금을 납부하고 존경한다(6-7절).

5. 성도가 정치를 위해 구체적으로 실천할

성령께서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셔서, 정치적 책임을 다하고, 무엇보다도 교회를 세우고, 우리 자신의 가정을 세우는 일에 힘쓰게 되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은 성도가 교회를 세우고 서로 사랑하도록 돕기 위해 국가와 정치를 세우셨다(12, 13장).

1) 정치와 국가에 대한 사명은 합당한 예배의 부분

국가와 정치에 대해 가르치는 로마서 13장은 12장에서 시작하는 그리스도인의 일상생활에 대한 가르침의 부분입니다. 12장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로마서는 1-11장까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피로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은혜를 믿어야 것을 가르쳤습니다.

12장부터는,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가 어떻게 하나님에 감사할 것인가? 구원받은 성도의 의무가 무엇인가를 가르칩니다. 12:2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영적 예배는 “합당한 예배”를 말합니다. 우리 고신 총회의 주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제사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삶 전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삶 전체를 예배로서 살아야 합니다. 성도가 예배하는 자세로 해야 중의 하나가 국가에 복종하는 것입니다(13장).


2) 성도와 교회가 사랑을 실천하도록 돕기 위한 국가(12, 13장)

로마서 12-13장의 흐름을 보면 국가와 정치는 성도와 교회가 사랑하며 살도록 돕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a) 12:3-13 성도가 사랑

b) 12:14-21 성도는 평화를 추구, 하나님이 악한 자에게 진노하여 징벌

c) 13:1-7 성도는 국가에 복종, 국가는 악한 자에게 진노하여 징벌

d) 13:8-14 서로 사랑하라. 빛의 갑옷을 입으라.


a) 12장은 먼저 3-13절에 성도들이 교회를 세우는 일을 통해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제물로 드리라고 합니다. 9,10절은 각자 은사로 거짓없는 사랑으로 교회를 섬기라고 합니다. 

b) 14-21절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것인가를 말합니다. 14절은 우리를 핍박하는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고 합니다. 17절은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보복하려 하지 말고 평화롭게 살라고 합니다. 19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진노하시고 원수를 갚겠다(복수하겠다)고 합니다.

c) 13:1-7절은 국가에 정치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보복하겠다고 하신 약속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섭리 가운에 악한 자를 벌하시기 위해 쓰시는 종과 직분자가 바로 국가와 정치, 공직자입니다.

d) 13:8절부터는 다시 “피차 사랑의 위에는 빚지지 말라.”고 합니다. 

12장에서는 성도는 교회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정의롭게 벌하십니다.

13장에서는, 국가와 정치를 통해서 악한 자를 벌하실 것을 믿고 성도는 실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을 통해 때, 우리가 교회에서 말씀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고 교회와 가정을 세우는 일을 돕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국가를 주셨습니다.

2. 국가와 공직자는 하나님이 임명했기에 성도는 복종해야 한다(1-2절).

“각 사람은”(1절): “각 영혼은”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율법에서 쓰는 말입니다(레 7:27). 모든 사람, 하나님의 백성에게 시대에 법을 주십니다.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1절): 굴복되라는 뜻입니다. 누구에게 굴복될까요? 굴복된다는 것은 “질서 밑에 들어 간다.”는 뜻입니다. 1절에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밑으로”라는 뜻입니다. 국가의 권세들 밑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실은 하나님의 권한 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국가는 자기 스스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와 다스림 밑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질서와 다스림을 국가를 통해 나타내기를 기뻐하십니다. 그 때문에 모든 국민은 국가의 권력을 존중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국가권력에 반역하는 자는 하나님께 반역하는 일입니다. 국가의 질서에 반대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습니다. 정부가 벌합니다. 그 벌은 사실은 하나님이 내리신 심판입니다.

이렇게 국가의 권력은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국가는 권위가 있습니다. 국가와 공직자를 통해 섭리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을 공경하기 때문에 우리는 국가의 법의 집행에 대해 항상 기쁘게 복종합니다. 그 공직자들 개인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을 사용하여 일하시는 하나님께 기쁘게 복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도 국민의 사람으로서 국가와 권력의 밑에 있지만, 국가 권력도 “하나님”밑에 있습니다. 국가는 아무 것이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가들도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에 복종해야 합니다. 정치가들이 하는 악한 행동은 하나님이 세운 선한 질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망가뜨린 하나님의 질서는 하나님이 회복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회복하실 것이라는 소망 가운데 우리는 국가와 공직자에게 복종합니다.

다니엘 7:27은 말합니다. “나라와 권세와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를 섬기며 복종하리라.” 모든 나라의 권세들이 언젠가는 하나님께 복종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 옵니다. 그 세상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교회와 성도에게 맡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2에서도 우리 성도들이 세상을 심판하고 다스릴 것을 말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지금 하나님께서 국가를 통해 세상을 다르시기 때문에 국가 질서에 복종합니다. 또 우리가 세상을 다스릴 날을 바라보며 지금 국가질서에 복종합니다.


3. 공직자의 사명: 하나님의 종으로 선한 일을 상주고 악한 일을 벌주어 정의를 세운다(3-5절).

1) 공직자의 사명: 하나님의 종으로서 권선징악(3-4절)

국가와 공직자는 악을 벌하고 선을 주어 정의의 질서를 세우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그들에게 복종합니다. 3-5절은 공직자를 하나님의 종/직분자라고 번이나 말합니다. 6절에서는 하나님의 일군이라고 합니다. 

권력을 집행하는 공직자는 자기 힘으로 아무 일이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그들은 선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운 존재가 아닙니다(3절).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을 일으키는 사명이 있습니다. 벌을 내립니다. 공직자의 권세는 선을 행하고 있는 자에게 두려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상을 내립니다. 로마 시대에는 동상을 세워 주기고 하고, 표창장을 주기도 했습니다. 왜 국가와 공직자가 그런 일을 합니까? 

공직자는 제일 높은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공직자는 “하나님의 사역자”(4절, 두 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종/직분자”(디아코노스)라는 뜻입니다. 집안에서 시중드는 종을 말합니다. 고대 시대에 종이 종류가 있는데 들판에서 일하는 종(둘로스)가 있고 안에서 시중을 드는 종이 있습니다. 로마 황제는 자기는 “큐리오스”(주님, 주인)라 합니다. 살아있는 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황제에 대해 말합니다. “황제는 나의 집에서 집사처럼 시중드는 종이요 직분자다.” 황제는 하나님께 받은 사명에 복종해야 종입니다. 

어떤 사명입니까?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선을 위합니다.” 즉, 선한 결과가 돌아가도록 일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을 선하게 만드는 능력은 없고 선한 사람에게 선한 결과가 돌아가도록 정의로운 질서를 세워야 합니다.

공직자는 악을 행하는 자를 두렵게 합니다. 칼, 즉 권력과 힘을 그냥 헛되게 가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직분자로서 악을 행하는 자를 보응합니다(4절). 진노하심을 이룹니다. “악, 진노, 보응” 세 단어는 바로 장, 12장에서 하나님이 하는 일을 두고 말합니다.

12:17절입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악에 대해, 원수 갚는 것(보응), 진노하심” 모두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국가와 정치가가 하나님의 .직분자로서 일을 대행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재산을 누가 뺏아 가고, 우리를 때린다면, 본능적으로 나도 복수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께서 경찰과 법을 통해서 나쁜 사람을 벌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정의롭게 다스리십니다. 이 일을 위해 공직자와 정치가를 사용합니다. 


2) 양심의 자유 가운데 국가 권력에 복종(5절)

5절은 다시 1절을 반복해서 말합니다. 성도는 국가에 복종해야 합니다. 국가의 질서 밑에 들어 가야 합니다. 성도는 국가가 하나님의 진노와 벌을 내리기 때문에 억지로 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할 없으니 (필연적으로)” 복종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국가의 법과 질서를 존중합니다. “양심 때문에”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양심으로 하나님에 복종하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위해 국가에 복종하고 공직자의 행정을 따릅니다.

이렇게 왕국에 복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양심의 자유와 평화를 줍니다. 이렇게 배운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의 군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큰 칼을 차고 다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종에 불과합니다. 로마 군인들이 타고 오는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더라도, 성도들의 마음은 평안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하나님의 일을 대행하는 종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평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이웃에게 선한 일을 힘쓰는 일을 계속 합니다. 이웃 사람이 빼앗아간 땅을 로마 관리들이 찾아 터이니 마음이 편합니다. 

사도 바울도 바로 로마 국가가 선을 돕고 악을 벌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에서, 성전에서 설교할 때, 유대인들에 의해 죽을 뻔했을 로마 군인들이 구조해 주었습니다. 또 유대인들이 총독의 재판을 부당하게 만들려고 하니까 로마 황제에게 재판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3) 국가권력의 한계

국가와 정치는 하나님의 직분자이지만 모든 일을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계가 많습니다. 

첫째는, 국가는 나쁜 사람을 착하게 변화시킬 능력이 없습니다. 그냥, 선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선한 일이 돌아가도록 질서를 세웁니다. 또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내립니다. 선한 사람이 나쁜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고, 악한 사람이 이익을 보지 못하도록 그런 결과를 만듭니다. 정의로운 질서를 세우는 일을 합니다. 악한 사람이 선하게 변화하도록 하는 일은 교회가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한 성도들만이 서로 사랑합니다. 함께 평화롭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그런 교회를 세웁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이 사람을 선하게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정치와 국가에 너무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복음을 전하고 복음 대로 사랑하는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둘째로, 모든 국가와 공직자들이 그들의 사명을 다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악한 정치가들, 교회를 핍박하는 정치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정치가를 선하다고 칭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선한 질서를 혼란시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은 워낙 크시기 때문에 그런 악한 정부 안에도 선한 것이 있을 밖에 없습니다. 그 선한 것을 생각하며 그리스도인은 복종합니다.


4. 국가와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의무: 하나님의 거룩한 일꾼으로 인정하고 세금을 납부하고 존경한다(6-7절).

이제 마지막으로 6,7절은 국가와 공직자에게 복종하기 때문에 해야 가지를 말합니다. 세금을 바치고 마음으로 존경합니다.


1) 공직자는 성직자와 같고 국민은 세금을 납부할 의무(6절)

첫째로 국민은 세금을 내야 의무가 있습니다. 국가가 해야 일에 힘쓰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국가가 악을 벌하고 선행한 자에게 상을 주면서 국민이 평화롭게 있는 질서를 만드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 재정이 필요합니다. 국민은 세금을 내고 공직자에게 월급을 줍니다. 공직자들은 국가 재정을, 국가가 해야 직무에 사용해야 합니다. 공직자는 자기들이 안락하게 살고 사치할 정도로 많은 급여를 받아서도 됩니다.

6절에서 공직자들이 정의를 세우는 일에 “힘쓴다”는 말은, 12:12에 “기도에 항상 힘쓰며” (행 1:14, 골 4:2)에 말입니다. 공직자를 나타내는“일꾼(에이투르고스)”은 원래 성전의 제사장 일이나 성직자를 말합니다(롬 15:2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에 썼습니다). 더구나 공직자를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합니다. 

로마의 황제와 공직자도, 지금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나 공직자도, 그들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공직자입니다. 성도들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교회에서 기도에 힘쓰고, 또 사도와 교회의 직분자들이 하나님을 섬깁니다. 마찬가지로 공직자도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이루어 가는 세속사회의 성직자들입니다. 성도들은 공직자들이 부패한 것을 때도,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계시면서 그들을 사용하심을 알기 때문에 너무 크게 분노하지는 않습니다. 혼란에 빠지지 않습니다. 우선은 계속 세금을 내고, 먼저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가정을 세우는 일에 힘씁니다.


2) 공직자와 국가를 공경할 의무(7절)

성도는 모든 사람을 존경해야 하지만, 특히 공직자를 공경해야 합니다. 성도는 모든 사람에게 “줄 것을 주어야”합니다. “당연히 받아야 것들/빚진 것들 갚아라.”는 뜻입니다. 국가에 대한 의무를 “빚진 것을 갚는 것”에 비유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과 복음에 빚졌다고 했습니다(롬 1:14). 하나님께서 국가(공직자)를 통해 하나님의 질서와 정의를 세우시는 은혜를 성도는 받고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빚진 자이기 때문에 공직자들에게도 빚진 자로서 공경합니다.

빚진 자처럼 국가에 세금을 납부할 아니라 공경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두려워 자를 두려워 하고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두려움을 받아야 자에게는 두려움을, 존경을 받아야 자에게는 존경을 갚아라.” 국가가 악한 자를 벌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악한 자를 징벌하는 국가를 성도는 존중합니다. 두려움을 존경하는 것을 “공경”이라고 합니다. 성도는 공경하는 태도로 국가기관을 존중하고 공직자를 존중해야 합니다. 공직자는 하나님의 종이요 거룩한 일꾼으로서 일하기 때문에 그들 안에 일하는 하나님 때문에, 그들이 하는 일의 중요성 때문에 성도는 공직자와 국가를 공경하고 따릅니다.


5. 성도가 정치를 위해 일: 기도와 실천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 배우고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서로 사랑하며 자랄 있도록, 국가와 공직자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이요 일꾼으로 세워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교회와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도록 하셨습니다.

선물인 국가와 공직자를 위해서 우리가 사명이 있습니다. 

첫째, 나라와 공직자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디모데전서 2:1은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29:7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주신 말씀입니다. 자기를 괴롭히는 나라의 번성을 위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둘째, 행동합시다. 공직자를 존중하고 법을 지킵시다. 법을 어기는 사람은 권유하고 남을 때리는 사람을 보면 빨리 112 경찰에 신고해야 합니다. 지금은 참여 민주주의 시대에는 우리 모두는 공직자입니다. 선거 때는 투표합시다. 자기 이익때문에 투표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 투표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야 정치가 깨끗해집니다. 성도 중에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아니면 대통령이 되어 하나님의 직분자가 되면 좋습니다. 어느 당이든지 정당에 가입하여 참여하면 정당문화를 깨끗하게 바꿀 있어서 좋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힘이 된다면 기독교 유권자 운동, 기독교 정당을 조직하여 정의로운 정치를 나타내면 좋겠습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희생이 따릅니다. 그리스도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로 드리는 자기희생입니다.

정치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사랑의 실천이기도 합니다. 7절에 국가에게 “줄 것을 주는 것” (오페일레)는, 8절에 이웃 사랑에 대해 “빚지는 것”(오펠레오)과 어원이 같습니다. 정치적 책임을 다해서 국가가 정의를 바로 집행하는 것은 정치를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정치가 부패하면 정직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피해를 봅니다. 그러나 정치가 건강하면 정직하고 약한 사람들이 복을 받습니다. 

국가와 공직자의 부패에 대해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가? 당연히 바로 잡아야 합니다. 법과 행정이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시민으로서 항의하고 좋은 방법을 시행하도록 제안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국가와 공직자 정치가를 종으로 삼으셔서 세상에 악을 자라지 않도록 방지하고 선한 사람이 선한 보상을 받도록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국가와 공직자의 행정활동에 기쁜 마음으로 복종합시다. 우리 모두도 국가라는 제도를 섬기는 하나님의 종으로 불러 주셨으니 국가와 정치가 바르게 되도록 기도하고 참여합시다.

로마서 13장

개역

사역

1 <그리스도인과 세상 권세>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3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5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없으니 진노 때문에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것이라

6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 모든 자에게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1 각 영혼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십시오/질서밑 들어가십시오. 

왜냐하면, 권세 하나님 의한 것이 않은 것이 없으며, 그런데 존재하는 것들은 하나님 의해 정해진/질서지워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따라서 권세 반역/질서-반대하는 자는 하나님 명령/질서정함 반대하고 있으며, 반대하는 자들은 자신에게 심판을 받게 것입니다. 

3 왜냐하면, 관원들 선한 행동이 아니라 것에 두려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권세 두려워하지 않기를 원합니까? 

행하고 있으면, 그러면 당신은 그것으로부터의 가질 것입니다. 

4 왜냐하면 하나님 종/직분자로서 그는 당신에게 위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혹시라도 행하고 있다면, 두려워하십시오.

왜냐하면 헛되게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종/직분자로서 그는 행하는 자에게 응징하는 자가 되어 노하심 위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5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그것에 굴복해야/질서 밑에 들어가야 합니다--노함 때문 만이 아니라 양심 때문에.

6 왜냐하면, 이 때문에 세금을 바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일꾼들로서 그들은 이것에 전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7 여러분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당연히 받아야 것들/빚진 것들 갚아 주십시오---세금 받아야 자에게는 세금을, 간접세 받아야 자에게는 간접세를, 두려움을 받아야 자에게는 두려움을, 존경을 받아야 자에게는 존경을 (갚아 주십시오.)



<주석>

<아웃라인>

1. 서론적 명령: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1)

2. 이유 1: 하나님이 정하셨기 때문이다 (1,2)

- 반대하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반대하므로 심판을 받는다 (2)


3. 이유 2: 관원들은 권선징악을 하는 하나님의 종/직분자이기 때문이다 (3-4절)

1) 관원은 선을 행하는 자에게 상을 주는 하나님의 종이므로, 선을 행하는 자는 두려워 이유가 없다 (3. 4a)

2) 관원은 악을 행하는 자를 응징하는 하나님의 종이므로, 악을 행하는 자는 두려워 해야 한다 (4b- )


4. 결론적 일반적 명령- 필연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5)

노함 때문이 아니라 양심 때문에 복종해야 한다.


5. 구체적 적용: 모든 사람에게 당연히 받아야 것- 빋진 것을 주라 (6,7절)

1) 로마 그리스도인의 관행: 세금을 바치고 있음, 각자에게 받아야 것을 주라 (6절)

2) 권위를 존중하라 (7절)


모든 사람에게 사랑의 빚을 자로서 대하라 (8-10절)

- 사랑은 모든 율법의 완성이다 (8-10절)

대지: 국가는 하나님의 종/직분자이므로 양심으로 굴복하라.

상황: 

하나님의 새로운 나라에 속한 백성, 세속 사회 속에 여전히 살고 있음.

- 두 가지 가능한 유혹: 국가의 질서를 부정하고, 기독교인들의 독립 공동체를 만드는 것. 그러면서 국가에 세금을 내지 않고 국가에 굴복하지 않음.

- 로마 국가와 일반 문화에 그냥 적응. 맹종함. 

목적: 국가는 하나님의 종/직분자이므로 양심으로 굴복하도록 가르치기 위해


성도의 상황: 

- 정치적 무관심, 개인적 상황에만 관심이 있다.

- 국가에 대한 무비판적 지지

- 국가의 정당한 직분, 정치가의 정당한 직분에 대한 이해가 없다.

- 하나님의 다스림, 하나님이 우리가 속한 국가를 정치가를 직분자로 세웠음을 모른다. 무정부주의적 생각

목적: 국가는 하나님의 종이므로 양심을 따라 정치에 참여하도록 가르치기 위해

대지: 국가는 하나님의 종이므로 그리스도인은 양심의 판단에 따라 정치에 참여하여 복종해야 한다.


맥락 - 성도가 세상에서 사랑 

사랑에 대한 말씀 - 롬 12:9-21 

17-21평화, 보복은 하나님의 진노에 맡기고 평화, 선으로 악을 이기라.

국가 13:1-7

사랑 13:8-14 12장에서, 겸손, 정직, 평화, 하나님의 진노에 기회를 주는 것에 이어서 국가를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덕성의 좋은 .

칼빈: 이곳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교훈/강요in christianae vitae institutione 를 근면하게 다루면서 그는 특히 필수적인 것으로 neccessitate 그렇게 긴박함을 느꼈다. “비록 복음의 선포는 항상 이것을 필수적으로 하지만. 

“왜냐하면 항상 소요를 일으키는 영혼들, 즉 그리스도의 나라는 지상의 모든 권력들이 제거되지 않으면 충분이 높여질 없으며, 또 모든 인간적 예속의 굴레를 던져 버리지 않으면, 그 분에 의해 주어진 자유를 즐길 없다고 생각하는 어떤 영혼들이 항상 있기 때문이다”, Calvin, Comm, 477.

1)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오기 전에 독립국가가 번성했기에 그것을 계속 기대 2) 세속 정부는 경건을 혐오했을 아니라 경건을 가장 적대적인 마음으로 핍박, Calvin, Comm, 477. 따라서 하늘과 땅의 유일한 주님인 그리스도로의 왕국을 뺏으려 시도하는 적법한 왕과 통치자들을 인정하는 것은 불합리해 보였다 absurdum, Calvin, Comm, 478.

“이 때문에 바울은 먼저 아주 주의깊게 공직자 magistratum의 권세를 확인하는 듯하다. 그리고 먼저 그는 일반적 원칙 generale praeceptum 을 제시하여, 그것으로 앞으로 말할 것을 전체적으로 포괄한다. 이어서, 그는 원칙에 대한 해설과 근거 expositionem ac probationem 를 제시한다, Calvin, 479His oausis verisimile est inductum fuisse Paulum ut intentiore cura magistratuum potestatem confirmaret.Et principio quidem generale praeceptum ponit, quo in summa comprehendit quod die turns est: subiungit deinde quae ad eius praecepti expositionem ac probationem faciunt.


Ernst Kasemann은 본문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임기 응변의 상황과 관련한 것으로 해석

“본문은 신학적이거나 형이상학적 기초가 아니라, 정치 당국에 복종하라는 권면 위에서 권면의 성격” 로마 제국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지역적 국지적 권위를 말한다. 로마 국가의 기능이라 있는 세금징수원, 경찰, magistrate, 로마 공직자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Ernst Kasemann, 354.

“이 모든 것이 첨가되었을 결과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타락한 세상도 하나님이 설정한 질서를 나타내는 것들과 도구들이 있으며, 창조주는 분의 further 조치를 그것에 대해 있다.” , Ernst Kasemann, 356

(논평: 너무 주관적이다. 본문이 로마 성도들에게 말하므로 당연히 로마 국가로 읽어야 한다.).

저항을 전부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열광주의에 대해 일면적으로 경계하는 것이다, Ernst Kasemann, 357

정부에 대한 저항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에는 고전 14:33 이후, 14:34에서 복종을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을 말함으로써 결정적으로 말한다. 그러나, 국가에 대한 저항에 대해서는 이런 언급이 없다, Ernst Kasemann, 357.

국가에 대한 관점은 자연법에 기초한 것은 아니다. “이후의 교회 교의들로부터 사후적으로 발전하고 해석한 occasional remark” 것이다, Ernst Kasemann, 356. 바울이 정해진 질서를 확립하려는 동기가 있지만 그는 이것을 시간과 상황에 완전히 연결하여 한다. 그러나 고전 11:3 이후 처럼, 즉 하나님의 고정된 뜻을 말하는 그런 설득을 하지 않다. 오히려, 고전 6:1 이후에서처럼,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서, 묵시적 관점에서 국가 질서는 평가절하되고 배격된다.. 종교사학적 관점에서 원리는 바울 자신을 통제하는 정도도 아니다, Ernst Kasemann, 357.


1절, 권세

칼빈: 공직자가 어떤 권한으로 다스리는가에 대한 호기심을 제거한다. “그들은 자기 권세로 지위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손에 의해 두어져 왔기 때문이다.”, Calvin, 478.

권세가 이루어지는 영역을 의미하기도. 여기서는 권력자, D. Moo, 795.

위에 있는 (휘페르콘테스)-위페르-에코의 동명사. 벧전 2:13에 왕, 혹은 황제. 그들을 supreme으로 보는 것은 당연, C. K. Barnett, 24.


1절, 권세는 하나님에 의한 것이 아닌 것이 없으며

칼빈: “우리가 공직자에게 복종해야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ordination 질서로 임명에 의해 세워졌기 때문이다 constitute.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렇게 세상을 다스기를 기뻐하시므로, 하나님의 질서를 전복하려는 사람은 이를 통해 하나님 자신을 저항하고, 그 분의 권세를 멸시한다. 왜냐하면, 시민권력의 기초자이신 분의 섭리를 무시하는 것은 분과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 Calvin, 479. “나아가 이것을 이해하라. 권력들이 하나님께로부터 것은, 질병, 기근, 전쟁들, 그리고 다른 죄로 인한 징벌들이 분으로 것과 같은 것으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법하고 의롭게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서 분이 그것들을 제정했다. Instituerit. 왜냐하면, 비록 독재들과 불의한 시행은, 무질서(아-탁시아스)로 가득찬 것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질서정하신 통치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치의 권한자체imsam ius imperii 는 사람의 일반적 복지 salutem을 위하여 하나님에 의해 질서 정해진 것이다. Nam etsi tyrannides ac dominationes iniustae, quum plenae sint àxa^iaç, non sunt ex ordinata gubernatione: ipsum tarnen ius imperii in humani generis salutem a Deo ordinatum est., Calvin, 479, L 246.

(논평: 칼빈은 하나님이 정했다는 것은 질서탁스의 동사인 타소마이므로, 무질서는 하나님이 정한 것이 아니라 의미. 그 하나님이 정한 권력의 시행이 악용되었고 권한 자체는 하나님이 질서로 정하셨다는 의미. 그래서 독재나 불의한 시행을 합리화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독재를 선지자적 관점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죄하는 관점이다.)

“전쟁을 물리치고 다른 악독의 치유책을 추구하는 것이 가하므로 liceat (논평: 이 단어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 권한으로 허용되는 것을 말한다. 필요할 그렇게 사용한다는 뜻이다. 항상 그렇게 해야 하는 필수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공직자의 권리와 권력 ius et imperium이 사람들의 일반적 유익 utile을 위한 것으로 우리에 의해 기꺼이 그리고 즐겁게 존경과 경외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한다. 왜나하면, 하나님이 사람들의 죄에 대해 부과하는 징벌을 우리는 ‘원래적 의미에서 proprie의 질서라고 부를 없고, 적법한 질서를 보존하기 위한 의도로 제정한 statuit 수단이다. (논평: 징벌은 국가의 원래적, 즉 하나님이 정한 창조하신 질서가 아니라, 그것을 교정하기 위한 법처럼 statue처럼 제정한 statuit한 것이다.) , Calvin, 479.


1. 복종하라.

우리의 기존에 존재하는 것을 바꾸려는 우리의 혁명적 노력도 사실은 다른 기존의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혁명은 옛것을 멸망시킨 후에, 다시 옛것을 새롭고 강력한 형태로 회복하는 효과가 있다.”, Karl Barth, 483.

단순과거는 항상 수동의 의미. 복종하라 보다는 굴복되라. submit, D. Moo,797.

굴복은 항상 위계질서의 의미. 정부 (딛 3:10, 영적 지도자 (고전 16:16), 예언자가 예언자에게 (고전 14:32) , 그리스도인이 서로에게 (엡 5:21), 아내가 남편에게 (엡 5:24) 노예가 주인에게 (딛 2:9), , D. Moo, 797.

그리스도인의 복종은 정부 형태 (왕정, 민주, 혹은 공화정)에 따라 달라진다, Fitzmyer, D. Moo, 797. 각주 26 에서 재인용


1절.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4:17, 구약에서 하나님이 권세자를 임명, D. Moo, 798.

그래서 로마 당국을 위해 매일 제사를 지냄, C. K. Barnett, 225.

“하나님의 권위”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섭리”에 대한 가르침 때문에.

“그분 자신의 피조물을 고삐풀린 죄의 결과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분은 그들에게 시민적 통치자를 임명했다. 이것은 그들에게 태양과 비를 공급한 것과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태양과 비가 과도할 있고, 그래서 가뭄과 홍수로 피해와 고통을 일으킬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조물들이 있는 환경을 제공하신다는 사실과 상충되지 않는다. 권력 당국이 해이하고 게으르거나 혹은 독재적인 과도한 권력을 추구한다는 사실도 마찬가지고, 그들이 평화와 복지 가운데 살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의도와 상충되지 않는다. 따라서 국가는 하나님이 인류의 유익을 위해 설립한 섭리적 질서 가운데 정해진 위치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국가를 교회와 혼돈하고 시민법을 복음과 혼돈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우주 자체와 자연법을 교회와 복음과 혼돈하지 않는 것과 같다. 국가당국은 자비로운 하나님이 제공하신 것이다 provision” , C. K. Barnett, 225-6.


1절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 나지 않음이 없고

“따라서 기존 질서의 악에 의해 직접 상처받고 부상당한 관찰자조차도 모든 신들 위에 있는 그처럼 강하고 놀라운 하나님 앞에 경배해야 한다, Karl Barth, 484.


2절, 자신에게 심판 (크리마)

칼빈: 하나님의 섭리에 반항하므로 징벌. 권위에 부당하게 저항한 자에 대한 공직자의 징벌 아니라, “하나님의 복수도 의미한다. 그것이 마침내 어떻게 집행되든지. 왜냐하면 그는 일반론으로, 하나님과 싸우는 자들에게 어떤 결말이 기다리는지를 말한다.” , Calvin, 479.

2절 전반부와 종말론적인 미래로 이해하여 하나님의 심판으로 있다. 동시에, 논리적 미래와 3절 이후의 두려움의 주제의 빛에서 지상의 심판도 의미한다, Ernst Kasemann, 357.

여기서 종말의 심판, 로마서에서 다른 5번 4번은 종말의 심판(2;2, 3, 3:8, 5:16), 11:3만 하나님이 역사 안에서 심판, D. Moo, 799. 각주 43. 


2절, 권세에 반대하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반대

“현존질서그것 자체는 새로울지라도 뒤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그분이 심판자요, 그분이 옳은 분이다.” , Karl Barth, 486.


3,4절. 왜냐하면 관원들은 선한 행동이 아니라 악한 행동에 두려움이 되기 때문에

칼빈: “이제 그는 관원들에게 복종해야 이유를 유익이라는 관점 ab utile 에서 권한다.” 왜냐하면 절이 아니라 번째 명제 prosositionem를 말한다. “그 유용성은 이것이다. 주님은 이런 방법으로 선한 사람들을 위해 평안을 제공하고, 악한 사람들의 완고함을 제어하려 뜻하셨다. 이 가지에 의해 인류의 안전이 보장된다. 왜냐하면 악한 자의 광포가 저지되고, 무죄한 자들이 그들의 폭력으로부터 보호되지 않으면 모든 것은 완전히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이것이 인류가 파멸로부터 보존되는 유일한 길이므로, 우리가 인류의 공적 적들로 되지 않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주의깊게 지켜야 한다.” , Calvin, 480.

3절, 네가 두려워 하지 않기 원하느냐? 선을 행하라.

칼빈: “이를 통해 그는 우리가 선을 행한다면 공직자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음을 말한다. 아니, 우리가 자신으로부터 멍에를 싫어하거나 던져 버리려고 원한다면, 그것은 악한 양심의 증거요, 어떤 악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간접적 증거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진정한 말자면, 본질적인 공직자의 임무를 말한다. 그러나 그것으로부터 종종 권력자들 princibus이 벗어난다. 그럼에 불구하고 권력자에게 주어야 복종은 돌려져야 한다. 왜냐하면 악한 공직자는 대중의 죄들을 벌하기 위한 하나님의 채찍이기 때문이므로, 하나님의 탁월한 축복이 저주로 변한 것은 우리의 오류 때문임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한 정한 질서 ordinationem를 존중하기를 멈추지 말라. 거기에 수단되는 어떤 악/나쁜 것이라도 우리의 것으로 간주 impute 한다면 그렇게 있다.

“따라서 그는 여기서 주님이 공직자를 제정한 institute 목적을 가르치고 있다. 그 고상하고 건전한 제도 institutio가 우리의 culpa에 의해 부패되지 않는다면, 그것의 그러한 효력은 항상 나타날 것이다. 동시에 권력자들princese 들이 선하고 죄없는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에 의해 그들의 권력을 악용해도, 그들의 독재 가운데서도 모종의 의로운 시행 dominationis를 견지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어떤 독재라도 부분적으로는 인간 사회 공동체를 공고하게 하는 도움을 주지 않는 경우는 없다.”, Calvin, 480

그는 여기서 철학자들이 말하는 질서지워진 공화국의 행정의 가지 측면, 즉, 선을 보상하고, 악을 징벌하는 것을 말한다, Calvin, 481.

관원에게 복종할 번째 이유. “사회에서 질서 유지” “세상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 , D. Moo, 800.

선을 행하는 것은 두려움으로터 자유롭게 아니라, 관원으로부터 칭찬, D. Moo, 800.


3절, 선과 칭찬은

선악은 하나님과 연결된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이 주는 통상적인 것을 의미, Ernst Kasemann, 358.


3절, 국가의 표창

동상이나 표창장을 주었다, C. K. Barnett, 226.


4절, 관원은 하나님의 직분자.

칼빈: “공직자는 여기서 그들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한다. 공직자는 하나님의 직분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유익을 위하여 다스린다. 무제한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복지를 위하여 제한된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그들의 권력의 행사에서 책임져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파송받았고 일을 하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 책임져야 한다. 또 그들의 행정은 국민과 관련하여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그들은 국민들에게 빚진 자이다. 개인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선함을 통해서, 왕들의 칼에 의해 악한 자들의 피해로부터 보호받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Calvin, 481.

바르트: ‘존재하는 권력’ (역자주: 하나님을 말함)은 인간의 변덕스러움을 통제한다. 복종을 요구하며, 어떤 점에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요구하는 복종을 요구한다.” , Karl Barth, 488. 

기존 질서도, 혁명도 하나님의 종이다. 존재하는 것의 부정적인 것을 인지하는 자에게는. 그들에게는 “조용한 묵상이 이리하여 혁명의 발작을 대체해 왔다.” “정치적 경력은 예를 들면 그것이 기본적으로는 게임으로 여겨질 가능하다. 즉, 우리가 절대적 정치적 권리를 말할 없을 때, 정립과 반정립으로부터 ‘절대’의 논조가 사라졌을 때, 인간의 가능성들이 포기되는 상대적 겸손 혹은 상대적 급진주의를 위한 여지가 마련되었을 때이다.” , Karl Barth, 489. 

직분자: 디아코노스 

헬라에서 공무원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 에스더 1:10, 2:1, 6:3에서 궁정 관리. 렘 25:9-느부가네살, 사 25;1고레스.

정치가가 신에 의해 임명되었다는 생각은 성경 아니라 플루타르크에서도 나옴 “통치자는 인류의 돌봄과 안전을 위한 하나님의 사역자다. 그들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축복과 유익을 나누어 주거나 안전하게 보관” , D. Moo, 801. 각주 51. 

직분은 교회의 직분. “이 상당히 기술적 용어 technical term의 사용의 배경에는 일반적 봉사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처음에는 그리스도에 의해, 다음에는 그분에 의해 교회를 통해 수행되는 사역, 즉 하나님의 종말론적 목적을 확장하는 사역에 대한 생각이 깔려 있다. 이 목적을 위해서 사도와 그들을 돕는 자들과 함께, 국가와 대표자들은 부분을 감당한다. , C. K. Barnett, 227.


4절, 네게

당신에게는 하나님의 종의 ‘수혜적 dative good은 그리스도인의 행동, D. Moo, 801. 각주 52. ??? 

논평: 후반부에 악을 행하는 자에게 , eis to ,진노하심과 대조하여, 너에게는 ‘선을’ 즉 상을 주는 것으로 보아야. 


4절 보응하는

칼빈: 공직자는 악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부과하기 위해 무력을 행사한다. 

“응징의 수단” Kaseman 헬라배경에서 단어의 의미는 “진노를 대행하는 agent” , D. Moo, 802. 각주 58.


4절, 하나님의 노하심

하나님의 종말의 진노를 현재도 종종 이루시는데 (롬 1:18), 국가 권력이 바로 역할을 한다. “역설적이게도 그것(국가)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2:4)의 수단이다. 그분의 진노의 부분적 나타남을 통해 악의 세력이 제한되고 마지막 심판과 멸망defeat이 연기되기 때문이다. 살후 2:6 이후 참조” , C. K. Barnett, 227.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이어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살후 2:6,7).


5절 양심 때문에

칼빈: 권력의 징벌 때문이 아니라 양심 때문에 복종해야 한다. 벌이 없더라도 복종해야 한다. 주님이 권세를 세우신 사람으로부터 권세를 빼앗아서는 된다, Calvin, 482.

이것은 모두 시민적 정부에 관한 논의이다. 따라서 양심을 지배하려는 자는 그들의 신성모독적 독재를 행하는 것이다, Calvin, 482.

바르트: “그러나 우리의 양심이야말로 드리워진 칼의 ‘중지!’를 이해하고, 하나님이 그분의 진노 가운데 있음을 안다. 우리의 양심은 우리가 대면하는 악을 단지 장애와 숙명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그것은 우리가 악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우리를 향해 드리워진 칼에서 하나님의 손의 의로움을 인식한다. 그것은 우리의 심판을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해석한다양심은 우리를 인간의 고통의 혼돈을 너머서 우리의 원초적 기원, 하나님에게 인도한다. --- 그래서 너는 복종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의도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새로움’은 ‘그 새로움NEW’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따라서 기존질서로부터 혁명적 생각과 행동이 나오기 전에, 혁명이 생겨나기도 전에, 우리는 우리의 반역의 기원으로, 기존질서 안의 악을 파악함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공포는 죄책감 없는 공포였다. 왜냐하면 우리는 피조물의 비참함 앞에서 하나님께 두려워 했다. 그때는 또한 우리 또한 피조물의 희망을 알았다 지식은 우리의 가장 깊은 가장 확실한 지식이었다´이 순간은 시간 안의 순간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름에 있어도, 우리는 바름 Right이 없음을 아는 것은 시간 안에서의 지식이다. 이 지식이 우리가 소망이 있다는 것, 혁명과 질서가 하나인 오는 세상 소망을 우리가 가지고 있음을 계시하는 지식이다.” , Karl Barth, 4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대한 신자의 지식”을 의미. 복종은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 정치와 결혼과 같은 것은 “우리의 유익과 분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섭리적 질서를 반영한다”, D. Moo, 803.

양심을 과거를 뒤돌아 보는 기능만으로 수는 없고, 앞을 향해 그리스도인의 행동을 지시하는 기능으로 보는 것이 낫다, D. Moo, 803. 각주 62.

국가의 징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만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종이므로 양심으로 복종한다, C. K. Barnett, 227.


6절 따라서, 세금을 바치고 있습니다

칼빈: 세금 바치는 이유는 공직자의 직무가 유익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선한 사람의 안정을 유지하고 악한 자의 악한 행동을 제어하는 것은 충만한 힘으로 도움을 받지 않으면 된다. 그래서, 그 필요한 비용을 지불한다. 세금을 얼마나 걷어야 하고 일을 위해 얼마나 쓰야 하는지를 여기서 논의할 장소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백성으로부터 받는 것은 공적 재산이며, 개인적 안락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용해서는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납부된 세금을 사용해야 하는 용도로 바울이 지정하는 것의 용도가 무엇인지 본다. 왕들도 그들의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급되는 것이다, Calvin, 483.

5절이 앞의 1-4절 내용을 이미 요약했으므로, 여기서는 양심 때문에 세금을 바친다는 의미, D. Moo, 804


6절 하나님의 사역자로 (레이투르고스)

바르트: “권력에 있는 사람, 기존 질서를 대표하는 정부 공직자들이 하나님의 제사장들인가? 그렇다. 확실히. 왜냐하면 그들의 존재와 권위, 그들이 전적으로 이상하게 당신 앞에-정당화되는 것은, 사람들의 의요 하나님의 세상의 목적 (Goal)인 분을 크게 선포한다. 그러면 그대는 다른 전적으로 다른 질서를 그렇게 크게 말하는 질서를 파괴하려 하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것을 주어라얼마나 사람이 해야 하기에는 얼마나 작고 흥미없는 명령인가? 이미 하고 있는 것을 하는 것. 기존 질서의 옳음과 혁명의 옳음에 관한 우리의 질문에 대해 이것은 실로 ‘만족스럽지 않은’결론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것은 불가피하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흥미롭고 중요한 질문들 앞에, 하나님의 위대한 부정이 놓여 있다. 어쩌면 우리는 사실은 그것을 위해, 우리가 이미 하고 있는 것을 하는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하는 보다 나은 것을 나타낼 없다.” , Karl Barth, 491.

성전에서 사역하는 사람을 말하고 신약에서는 주님을 위하여 ‘사역하는 사람’을 의미. 세속 사역자들이 종교적 기능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세속적’ 통치자의 ‘섬김’은 궁극적으로 거룩한 성격”이 있음을 의미 , D. Moo,

레이쿠르고스- 구약 성전에서 사역자 . 

신약에서도 8:2, 10:11, 롬 15:16. 보다 일반적으로는 2:25, 히 1:7

레이투르기아- 제의적 의미, 눅 1:23, 히 8:6, 9:21. 일반적 사역 고후 9:12, 빌 2:17 (제의적 연관성 있음)

레이투르기코스- 히 1:14, D. Moo, 804 각주 71.

일반 공직자에 대해서도 사용하는 단어이므로 “그 신학적 함축은 속격(genitive)인 ‘하나님의’로부터 나온다. 로마의 공직자들은 비록 그들이 거의 알지 못했지만, 로마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무원이었다. 그들이 것은 분의 일이었다” , C. K. Barnett, 228.


6절, 이것에 전념

이것- 권선징악, 세금 걷기를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지만, 가장 적절한 견해는 “섬김 자체 (

하나님의 종들’” , D. Moo, 805.


7절 두려워

칼빈: “그들을 존경하고, 법을 복종하고, 세금과 간접세 customs를 내어야 한다. 간접세는 다른 비용을 말한다. 이 구절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왕들과 다스리는 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누구든지. 우리가 강제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께 받으심직만한 봉사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두려워 해야 아니라 자발적 존경으로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Calvin, 483. 

“존경과 공경은 지상 통치자들에게 주어야 이유는 그들이 권세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에 의해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을 그들에게 주어야 존중 보다 적게 주는 것은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 C. K. Barnett, 228.

‘가이사에게는 가이사의 것을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것을’ 이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 (막 12:17)의 연장에서 바울은 통치자에게는 세금을 하나님께는 두려움을 바치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벧전 2:17에도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왕을 공경하라/티마오”로 말함. 그러나, 복음서의 전통과 바울이 말을 패라그라프의 제일 뒤에 것으로 보아, 세금을 내는 것은 국가의 권위에 대한 구체적인 표시라는 의미로 사용, D. Moo, 806.


7절, 각자에게 주어야 것을 주어라.

바울은 통치자를 악마적 존재로 보지도 않고, 영광스럽게만 보지도 않는다. “로마서 12:3과 고전 7:24에서 각자는 하나님이 주신 자기 위치에 머물러라는 말은 열광주의에 대한 공격이라는 하나의 측면으로만 설명될 있다.” , Ernst Kasemann, 359.

“바울이 다른 곳에서 통속 철학의 주제를 사용하여 열광주의자를 질서있게 진정시키듯이, 그는 여기서 국가와 시민에 대한 헬라적 이상을 채용함에 의해 그것을 행한다. 그러나 오직 열광주의자들만 주어진 상황에서 하여야 일을 함으로써 잠정적인 것들에서 우리의 예배가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보지 못한다.(참고: 열광주의자들은 땅의 국가 질서에 순종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들을 말함)

진정한 은사 공동체는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점에서 본다. 그것은 땅의 고난과 낮음의 가운데서 자신을 그러한 존재로 증명한다. 만약 교회사가 휘포타게를 향한 바울의 요청의 위험을 밝히 드러낸다면, 이것은 바로 다음 이유 때문이다. 즉, 특수한 상황에서의 그의 요청으로부터 이론을 만들어 내고, 권면으로부터 체계를 발전시키고, 영을 희생시키면서 율법을 만들어 때문이다(논평: 즉, 바울이 특수한 상황에서 것을 일반적 법칙으로 만들었던 것들은 바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 예를 들어 민주체제에 의해 상황이 확립되었을 때, 바울의 참된 관심, 즉 하나님은 정치 영역에서도 섬김을 받아야 한다는 관심은 무효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랜 슬로건들을 견지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으며, 낡은 형이상학들에 의해 부양되는 것도 아니다. 옛 요구는 실재와 문제들의 측면에서 파악되어야 하고, 여기에 적용되어야 한다. 바울은 은사 공동체가 이것을 있을 것을 확신한다.”, Ernst Kasemann, 359.


세금 포로스, 간접세 

소유세, 인구세 로마시민은 면제. 피지배민만

간접세- 물건을 사고 로마 시민만

저항권?

우리는 국가는 하나님이 정한 기관으로 (알고서) 감사하며 지도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에 절대권을 두기를 거절해야 하고 모든 요구들을 복음의 빛으로 평가해야 한다, D. Moo, 810.

상원의원 타키투스나 터툴리안에 의해 아주 나쁘게 묘사된 네로도 인기있는 군주였고, 특히 그의 재임기에 지방의 관리들은 나쁘게 통치하지 않았다. 또한 아우구스투스가 만든 질서도 아직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바울의 태도를 단지 하층계급의 지방적 충성이라 보는 것을 아주 부적절하다. 바울의 동기는 일차적으로는 신학적이지 사회학적인 것은 아니다. 또한 그것은 그의 사고 전체의 종말론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그리스도의 마지막 승리가 죽음을 삼키기까지 질서있는 삶이 계속되는 것은 아주 바람직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평화적으로 살며 복음을 전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국가라는 기제를 유지하고, 그 안에서 세상의 안정과 도덕적 질서를 유지하고 ‘진노의 날’ 이전에 그분의 진노를 작동하는 수단으로 하나님 자신이 임명한 수단을 인지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었다 , C. K. Barnett, 228.

“만약 바울의 ‘권세’의 사용을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신약성경은 국가에 대한 태도에서 일관성이 있다. 왜냐하면 (계시록처럼) 국가가 기독교인의 적이 되어 보일 때, 사실은 마귀적 세력들이 국가의 권위를 찬탈했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진짜 적이며, 핍박이 나타나는 것에 의해 보여진 그들이 국가에 대한 승리가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표시이다(막 13:9-13). 따라서 오스카 쿨만 박사가 ‘로마서 13장의 권세를 해석한 것( 악한 영적 세력-해신)은 진리와는 거의 정반대다. ‘권세들’은 마귀적 세력들을 ‘수행하는 대리자’ (Cullman, op. cit, p. 195)로서가 아니라 그들에 대항하는 산성으로서 하나님에 의해 제정되었다 appointed. “, C. K. Barnett, 228-9.

논평: 바르트는 로마서 3:1-7을 복음의 절대성에 비하여 상대적인 것으로 본다. 일종의 아디아포라라 할까?


<참고도서>

Barnett, C. K. The Epistle to the Romans. Peabody, MA: Hendrickson, 2001.

Barth, Karl. The Epistle to the Roman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72.

Calvin, John. Commentaries on the Epistle of Paul the Apostle to the Romans, in Calvin’s Commentary V. 19. 

Grand Rapids: Baker, 1996. John Calvin: Commentary on Romans -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ccel.org) -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ccel.org)

Kaesemann, Ernst. Commentary on Romans. Grand Rapids: Eerdmans, 1980.

Moo, Douglas, J. The Epistle to the Romans. Grand Rapids: Eerdmans,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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