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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설교 원고

주제: 합당한 예배, 세상의 소망

소주제: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본문 계 1:3~6(참고. 출 25:31~40; 27:20~21)

제목 성령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와 평강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3)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시며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4)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5)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6)”(계 1:3~6)


“너는 순금으로 등잔대를 쳐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결하고(31) 가지 여섯을 등잔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다른 세 가지는 이쪽으로 나오고 다른 세 가지는 저쪽으로 나오게 하며(32) 이쪽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저쪽 가지에도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여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같게 할지며(33) 등잔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34)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위하여 꽃받침이 있게 하되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며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며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게 하고(35) 그 꽃받침과 가지를 줄기와 연결하여 전부를 순금으로 쳐 만들고(36)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37) 그 불집게와 불 똥 그릇도 순금으로 만들지니(38) 등잔대와 이 모든 기구를 순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39)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할지니라(40)”(출 25:31~40)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20)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21)”(출 27:20~21)



<서론>

[3절에서 6절까지 읽었지만, 오늘 설교 본문은 4절 끝의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입니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고난 중에 있었습니다. 밖으로는 핍박이, 안으로는 이단의 세력이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들을 향해 삼위 하나님의 복을 선포합니다. 4절 중간에서부터 5절 중간까지의 내용입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한 문장으로 된 이 복에는 “~로부터(from)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전치사가 세 번 사용되어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①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지금 오고 계시는 분으로부터,

②(그리고) 그분의 보좌 앞에 계신 그 일곱 영으로부터,

③(그리고) (중략)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오늘 제가 설교할 내용은 이 삼위 하나님의 복 가운데서 두 번째로 나오는 성령 하나님의 복입니다. 즉, “그의 보좌 앞에 계신 그 일곱 영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여러분에게 전할 설교의 주제는 이것입니다.


주제: “성령님께서는 고난받는 교회에게 은혜와 평강을 주십니다.”


경과구: 성령님께서 어떤 분이시기에 은혜와 평강을 주십니까?


대지:

1. 성령님의 정체:

성령님은 일곱 영이시므로 은혜와 평강을 주십니다.

2. 성령님의 위치:

성령님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계시므로 은혜와 평강을 주십니다.


1. 성령님의 정체:

성령님은 일곱 영이시므로 은혜와 평강을 주십니다.


먼저 성령님께서 “일곱 영”이라는 표현을 살펴봅시다. 이것은 매우 독특한 표현입니다.

가장 쉬운 설명은 일곱이 완전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은 ‘완전하고 충만하신 영’이라는 뜻이 됩니다. 계시록에는 완전을 의미하는 일곱이라는 숫자가 매우 자주 등장하므로 이러한 해석은 상당한 일리가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 표현의 배경으로 이사야 11장 2절도 언급합니다. 이 구절에서 이사야는 장차 오실 메시아에게 임하시는 성령님을 일곱 가지 말로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사 11:2)


한글 성경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라는 번역은 히브리어로는 “경건의 영 그리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영”입니다. 그래서 지혜, 총명, 모략, 재능, 지식, 경건,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영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일곱 영”은 ‘메시아의 사역을 수행케 하시는 능력의 영’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상의 견해들은 모두 상당히 일리가 있고, 또 성령님은 실제로 그런 분이십니다. 그러나 계시록의 내용과 문맥을 먼저 살피면 실마리를 더 찾을 수 있습니다. 계시록에서 이 “일곱 영”이라는 표현은 이 본문 외에 세 번 더 언급됩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계 4:5)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서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계 5:6)


이 세 구절 때문에 우리는 “일곱 영”과 관련하여 세 가지 힌트를 더 얻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일곱 영”과 “일곱 별”(3:1)을 함께 가지고 계십니다. [일곱 영은 성령님,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 즉 목사들입니다(1:20). 목사는 성령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과 목사를 함께 가지고 계시므로 이 둘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둘째, “일곱 영”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등불”입니다.

셋째, “일곱 영”은 어린 양,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일곱 눈”입니다.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지십니까? 우리가 “일곱 등불”, “일곱 눈”이라는 표현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사실 구약을 아는 사람에게는 매우 친숙한 표현입니다. 계시록에는 구약에서 사용하는 표현이 사백 번 이상 나옵니다. 그러니 구약을 잘 모르는 사람은 당연히 어렵게 느껴질 것입니다. 반대로, 구약을 잘 아는 사람에게는 계시록이 아주 친숙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다음에는 일곱 금 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예수님에 대한 환상이 나옵니다(12~13절). 금 촛대는 원래 성막 또는 성전에 있는 거룩한 성물입니다. “일곱 영”, “일곱 등불”, “일곱 눈”이라는 표현은 모두 성막/성전의 정금 등대에서 유래한 표현입니다. 성막 양식을 살펴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설교 참고 본문인 출 25:31~40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정금으로 등잔대를 만들라고 지시하십니다. 줄여서 ‘정금 등대’라 부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정금 등대를 살구꽃 형상으로 만들라고 하십니다. 등대 여러 곳에 꽃, 꽃받침을 만들어두었습니다. 그러니 이 정금 등대를 나무 한 그루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사실 살구나무보다는 아몬드나무(almond tree)에 더 가깝습니다.

“살구”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두 가지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명사로 사용될 때는 아몬드나무입니다. 동사로 사용될 때는 “자지 않고 지키다”, “경계하다”, “파수하다”, 주의 깊게 지키다(be vigilant)”, “주의하다(be watchful)”라는 뜻입니다. 파수꾼이 밤에 보초를 서고 있는 모습을 머리에 그려보십시오. 정금 등대를 아몬드나무처럼 만들고, 그 안에 아몬드 꽃을 여러 개 새겨넣은 이유가 바로 이런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파수꾼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잠든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정금 등대에는 일곱 개의 등잔이 달려 있습니다(출 25:37; 37:23). 두 번째 참고 본문인 출 27:20~21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에게 정금 등대의 등불을 관리할 직무를 맡기십니다. 매일 저녁부터 아침까지 순결한 감람 기름으로 이 촛대의 등잔에 불을 밝혀야 합니다. 하루도 꺼뜨리면 안 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 중입니다. 광야에는 불뱀과 전갈이 있습니다. 아말렉 족속처럼 다른 유목민이 기습할 수도 있습니다(참고. 출 17:8~16). 그러나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진을 친 이스라엘은 안심하고 잡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파수꾼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진 쳤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이신 하나님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께서 불꽃 같은 눈으로 밤낮 그 백성들을 지키고 계십니다. 시편 121편은 바로 이런 하나님을 노래한 시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1)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2)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3)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4)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5)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6)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7)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8)”(시 121:1~8)


제사장들은 매일 교대로 성소에 거하면서 이 등불이 꺼지지 않게 보살펴야 합니다. 제사장의 등불 관리는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일종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설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파수꾼이시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너희를 지키신다.”


반대로, 제사장이 이 직무에 태만한 것은 하나님이 이제 이스라엘을 지키시지 않아도 된다는 불신앙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배교 행위입니다. 삼상 3:1~3에는 독특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1)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2)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3)”(삼상 3:1-3)


사사 시대 말기, 엘리 제사장은 자기 처소에 가서 눕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등불을 돌보는 직무에 무관심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이 사무엘이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이자 사사는 정금 등대의 불을 밝히지 않습니다. 이 직무를 버립니다. 그러나 아이 사무엘이 제사장을 대신해 이 직무를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직무를 버린 엘리 가문을 심판하십니다. 그 대신 사무엘에게 이스라엘의 사사와 제사장 직분을 맡기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정금 등대의 일곱 등불은 이스라엘의 파수꾼이신 하나님의 일곱 눈입니다. 하나님께서 눈 뜨고 지키고 계신 모습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자신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소개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19)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20)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21)”(요 2:19-21)


예수님께서 빛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정금 등대이십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 9:5; 참고. 8:12; 11:9~10)


빛이신 예수님께서 그 백성들을 지키시는 파수꾼이십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28)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29)”(요 10:28~29)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요 17:12)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오히려 그분을 배척하고 미워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지키시는 눈을 외면해버렸습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


그 결과, 하나님의 정금 등대는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교회로 옮겨졌습니다.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1:20)


요한은 고난받는 일곱 교회에게 은혜와 평강을 선포합니다. 성령님은 “일곱 영”이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일곱 등불”이십니다(4:5). 성령님은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일곱 눈(5:6)이십니다. 하늘에 계신 예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성령님을 통해 지금도 우리를 지키십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키십니다. 요한이 오늘 본문 바로 다음에 일곱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예수님 환상을 목격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오늘도 성령님을 통해 등불을 관리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지키십니다. 교회를 지키십니다.


2. 성령님의 위치:

성령님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계시므로 은혜와 평강을 주십니다.


사도 요한은 성령님을 ‘하나님의 보좌 앞에 계신 분’으로 묘사합니다.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성령님은 성부, 성자와 동등하신 분이신데 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을까요? ‘하나님의 보좌 앞’은 도대체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요?

성막에 친숙한 사람에게는 어렵지 않습니다. 정금 등대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 앞’ 어디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출 27:21; 참고. 레 24:3~4; 계 4:5) 


성막에서는 언약궤(증거궤)가 하나님의 보좌입니다. 정금 등대의 위치가 어디입니까? 언약궤 위입니까? 아닙니다. 언약궤 앞입니다. 언약궤는 지성소에 있습니다. 그러나 정금 등대는 지성소의 휘장 밖, 성소에 있습니다. 왕의 보좌인 언약궤는 지성소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일곱 등불, 일곱 눈은 휘장 밖, 성소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정금 등대를 왜 지성소가 아닌 성소에 놓아두셨을가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매일 만나시기 위해서입니다. 지성소는 오직 대제사장 한 명만이 일 년에 한 번만 들어가서 온 백성의 죄를 대속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소에는 모든 제사장이 순번을 정해서 금촛대의 등불을 관리하러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들어가야 합니다. 지성소의 거룩한 곳에서 백성들과 구별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성소의 등불을 통하여 매일 그 백성들과 만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제사장의 등불관리를 통해 파수꾼이신 하나님을 매일 만납니다. 매일 체험합니다. 그분과 매일 교제합니다.

아버지께서 백보좌 위에 계십니다. 아들은 아버지 우편에 앉아 다스리십니다. 성령님은 오순절에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와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오셔서 영원히 함께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시려고 하늘로 가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성령을 선물로 주어 영원히 우리를 지키시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성령님은 언제나 우리를 지키십니다. 매일 말씀의 등불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셨습니다. 그분이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하늘로 가신 예수님은 성령을 보좌 앞으로 보내십니다.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에게 보내십니다. 매일 지키십니다. 매일 인도하십니다. 매일 교제하십니다. 매일 그들의 고통과 한숨을 듣고 위로하십니다.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으로 인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을 뿐 아니라 “지금 오고 계시는 분”이 되십니다(4절).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생각합시다. 맨 처음, 우리는 예수님께서는 “일곱 영”이신 성령님과 “일곱 별”인 일곱 교회 목사들을 함께 가지고 계신 것을 확인했습니다. 성령님과 목사는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3:1; 참고. 1:20)


하나님께서는 계시록을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요한에게 명령하셨습니다(1:11). 4절 앞부분에, 요한도 일곱 교회에게 편지한다고 썼습니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4절)



그러나 실제로는 일곱 교회의 목사들에게 보냅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1) …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8) …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12) …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18)”(2:1, 8, 12, 18)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1) …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7) …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14)”(3:1, 7, 14)


온 세상에 대하여, 그리스도인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특히 예배를 인도할 때는 일곱 교회의 목사들이 제사장과 같은 직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구약의 제사장들이 정금 등대 등불을 관리하는 것처럼, 목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말씀의 등불을 켜서 설교함으로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교회는 핍박을 이깁니다. 이단을 물리칩니다. 본문 바로 앞 3절이 바로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많은 사람들의 짐작과는 달리, 이 말씀은 개인 경건의 시간(Q.T., Quiet Time)를 뜻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읽는 자”는 단수입니다. 즉, 한 명이 읽습니다. “듣는 자들”과 “지키는 자들”은 복수입니다. 즉, 회중입니다. “읽는”이라는 이 단어는 ‘조용히 묵상하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공적인 자리에서) 큰 소리로 또렷또렷하게 봉독하다(read aloud in public)’는 뜻입니다. 한 명이 큰 소리로 읽고, 회중이 듣고 순종하는 모습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네, 주일 공예배입니다. 일곱 교회의 지도자들은 회중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큰 소리로 낭독하고, 선포할 사명이 있습니다. “읽는 것”은 설교자의 사명 중 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목사 디모데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딤전 4:13)


그러면 일곱 교회의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졸면 안 됩니다. 딴생각으로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됩니다. 설교 채점관의 자세로 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목사가 읽고,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목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신실하게 설교할 때, 복이 임합니다. 회중이 그 설교를 경청하여 순종할 때 복이 임합니다. 그 복의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 4~5절입니다. 삼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계신 성령님은 오늘도 고난받는 교회와 함께 계십니다. 매일 말씀의 등불을 비추십니다. 매일 우리를 지키십니다. 

특히, 매 주일 공예배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목사가 전하는 설교를 통해 말씀의 등불을 환하게 밝히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를 지키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 성령님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은 매 주일 공예배마다 우리를 찾아오시며, 우리를 돌보십니다. 우리를 지키십니다. 아들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잔을 통해 고난받는 우리를 먹이시고 해갈하십니다.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사탄의 유혹을 이길 힘을 제공합니다.

여러분, 다른 곳에서 은혜와 평강을 찾지 마십시오. 다른 곳에서 위로를 구하지 마십시오. 눈을 뜨십시오. 귀를 여십시오. 입을 열어 그리스도의 떡을 먹어야 합니다. 다시 입을 열어 그리스도의 잔을 마셔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아들이 지금, 바로 지금, 이 시간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파수꾼이십니다. 그분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를 지키십니다.

아멘!




<설교 이해를 위한 질문>


1. 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처한 두 가지 어려움이 무엇입니까?


2. 계 1:4-5의 복된 선포를 세 부분으로 나누면 어떻게 됩니까?


3. “일곱 영”이라는 표현이 본문 외에 계시록에서 다시 등장하는 세 구절을 말해보십시오.


4. 하나님께서는 왜 “순금등대”를 특정한 나무의 모습으로 만들게 하셨습니까? 이 단어가 명사일 때와 동사일 때 어떤 뜻을 가지고 있습니까?


5. 하나님께서 광야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의 파수꾼이 되심을 어떻게 나타내셨습니까? 


6. 하늘에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날에도 우리를 지키심을 보증하기 위해 우리 속에 누구를 보내셨습니까?


7. 하나님께서는 순금등대를 어디에 놓아두라고 명령하셨습니까?


8. 성령님께서 보좌 위가 아니라 보좌 앞에 계신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어떤 위로가 됩니까?


9. 일곱 교회 목사들이 어떤 일을 해야 성령 하나님의 지키심과 교제를 각 교회 성도들에게 나타낼 수 있습니까?


10. 공예배의 중요성을 계 1:3과 연결하여 말해봅시다.


11. 이 말씀이 나와 나의 가정, 그리고 교회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 것인지 생각하면서 교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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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12(물두멍, 출애굽기 30장 17~21절)

    Date2022.05.19 Bykosin Views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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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11(향단, 출애굽기 30장 1~10, 34~38절)

    Date2022.05.19 Bykosin Views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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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10(떡상과 진설병, 레위기 24장 5~9절)

    Date2022.03.04 Bykosin Views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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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예배전쟁 12(찢어진 휘장 히10장)

    Date2022.02.07 Bykosin Views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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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예배전쟁 11(몸을 찢은 자들이 예배한다고 고전11장)

    Date2022.01.05 Bykosin Views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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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예배전쟁 10(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요4장)

    Date2022.01.05 Bykosin Views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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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서의 예배9(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영혼을 쏟아 일하라, 엡 6, 5-9)

    Date2021.10.26 Bykosin Views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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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9(성령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와 평강, 계시록 1장 3~6절)

    Date2021.09.16 Bykosin Views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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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8(하나님께서 정하신 합당한 예배, 히브리서 9장 1~5절)

    Date2021.09.16 Bykosin Views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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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7(기념 보석 호마노, 출애굽기 28장 9~12절)

    Date2021.09.16 Bykosin Views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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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예배전쟁 9(생명과 바꾼 예배 단3장)

    Date2021.08.25 Bykosin Views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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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서의 예배8(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서의 가정- 설교 두 편, 엡 5, 21-33 )

    Date2021.08.09 Bykosin Views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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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서의 예배7(하나님의 종인 공직자에게 복종하라 롬 13,1-7 )

    Date2021.08.09 Bykosin Views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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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예배전쟁 8(재개된 예배의 능력 대하31장)

    Date2021.08.09 Bykosin Views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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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예배전쟁 7(여호와의 응답이 넘치는 승리하는 예배 왕상18장)

    Date2021.07.08 Bykosin Views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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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6(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출애굽기 25장 8-22절)

    Date2021.06.10 Bykosin Views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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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5(동쪽 문, 민수기 3장 38절, 참고-창세기 3장 24절)

    Date2021.06.10 Bykosin Views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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