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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 (10)

설교제목/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예배


설교본문/ 창세기 17:9-14; 사도행전 2:43-47

주제문장/ 하나님께서는 귀로 듣는 말씀만이 아니라 눈으로 보이는 말씀을 주셔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할게 하신다.

설교개요/ 하나님께서는 설교 이후에 성찬을 베풀어 자기 회중을 먹이신다. 예배의 넷째 파트는 ‘하나님이 자신을 주십니다’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개신교회에서는 매주 성찬을 베풀지 않기 때문에 성찬이 예배의 필수요소가 아니지만 성례는 말씀과 한 쌍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유아세례의 중요성을 알아야 하고, 재세례를 베푼다든지 사적으로 세례베푸는 것을 금해야 한다. 공적신앙고백도 중요하게 취급해야 한다. 우리는 가급적이면 자주 성찬을 베풀어야 하고, 잔치와 교제라는 것을 알고 누려야 한다. 예배때 말씀과 함께 세례와 성찬이 자주 베풀어지는 교회는 참으로 복받은 교회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창 17:9-14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 행 2:43-46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성례는 말씀과 한 쌍을 이루고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성도 여러분, 지난 번에 성경낭독과 설교가 한 쌍을 이루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더 넓은 의미에서 설교와 한 쌍을 이루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겠습니까? 성례입니다. 둘 다 말씀과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혁가들은 설교를 ‘보이지 않는 말씀’이라고 했고, 성례는 ‘보이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설교는 우리가 귀로 듣는 말씀입니다. 요즘에는 설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시청각 자료를 종종 사용합니다. 그런데 설교는 기본적으로 보는 것이라기보다는 듣는 것입니다. 성례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무엇인가가 보입니다. 세례에서 우리는 물을, 성찬에서 우리는 떡과 잔을 봅니다. 세례에서는 물을 끼얹어 머리를 타고 그 물이 흘러 내립니다. 성찬에서는 떡과 포도주를 찢고 부어서 먹고 마십니다. 우리는 성례를 통해서 볼 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을 다 동원해서 느낍니다.
    성례라는 우리 말을 그대로 풀어보자면 ‘거룩한 예식’입니다. 동방교회에서는 이 성례를 ‘신비’(Mysterion)라고 불렀습니다. 성경에도 나와 있는 이 신비라는 단어는 원래 이교의 종교집단에 입문하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였습니다. 동방교회는 이 단어를 가지고 와서 그 의미를 변형시킵니다. 동방교회는 이전에 감추어져 있던 것이 비로소 드러났다는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성경에서 이런 표현들이 종종 있지 않습니까?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비밀, 하나님의 뜻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비로소 온 세상 가운데 드러났다고 말입니다. 성례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로소 드러난 구원의 신비를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한편 서방교회는 사크라멘툼(Sacramentum)라는 라틴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단어는 원래 로마 군인들이 충성을 맹세할 때에 사용하던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성례를 받는 이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입니다. 성례에 참여하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구원사역에 감격하면서 충성을 맹세합니다. 이방 신들에게 바쳤던 온갖 충성을 이제는 삼위 하나님께 바칩니다.
    개혁교회의 고백문서인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서 성례를 잘 풀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례는 복음약속의 눈에 보이는 표와 인”이라고 해설합니다(66문답). 종교개혁에 맞서 로마 가톨릭의 교리와 체계를 정비한 트리엔트 공의회도 비슷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사란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볼 수 있는 표지로서 은총을 표시하고 또 표시하는 은총을 실제로 주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로마 가톨릭에서는 그 성사가 자동성을 가지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즉, 은혜가 주입되는 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주사를 맞는 것처럼 말입니다. 은혜는 성례를 통해 자동적으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방편이 베풀어질 때 우리가 믿음으로 받습니다.
    성례는 복음약속과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성례는 우리가 만든 어떤 열심이나 신심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성례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해 주신 모든 은덕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신자는 성례를 통해 복음약속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는가를 눈으로 보면서 믿음을 새롭게 합니다. 
    성례는 확실하게 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성례를 표와 인이라고 말합니다. 표는 예를 들어 결혼반지를 생각해 보면 될 것입니다. 결혼했다는 표시로 결혼반지를 끼고 다닙니다. ‘이제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표시입니다. 이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표시해 주는 것이 성례입니다. 성례에 참여함으로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이 온 세상 앞에 드러납니다. 그리고 인은 도장을 찍는 것을 생각해 보면 됩니다. 문서를 만들고는 확실하다는 것을 보증하기 위해 도장을 찍습니다. 그러면 그 문서는 공적인 문서가 됩니다. 변경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듯이 옛날에는 편지를 쓰고 그 내용을 바꾸지 못하도록 둘둘 말아 끝부분에 촛농을 떨어뜨리고는 그 촛농이 녹기 전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도장은 증서에 써서 도장을 찍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인을 쳐 주십니다. 우리 속에 성령께서 계시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인침을 온 교회 앞에서 확인시켜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성례입니다.

세례와 성찬이 유일한 성례이다

    성례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까? 초대교회가 중세로 접어들면서 교회는 여러 가지 성례를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7가지로 늘어났습니다. 사람의 전 생애를 성례로 덮었습니다. 어떤 아이가 태어납니다. 그러면 사제는 그 아이에게 바로 ‘세례성사’를 베풉니다. 영세라고 부릅니다. 둘째가 ‘견진성사’입니다. 주교의 안수와 기름 바름으로 성령을 받게 하는 성례입니다. 이 성사는 세례성사를 완성하는 성사입니다. 셋째가 ‘성체성사’인데 미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의 성찬에 해당합니다. 넷째는 ‘고해성사’입니다. 고백성사라고도 부릅니다. 신자가 죄 속에 빠졌을 때 이를 다시 회복시켜주는 성사인데 사제에게 사적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결혼도 성사가 됩니다. ‘혼인성사’라고 부릅니다. 여섯째로는 ‘병자성사’인데 병이나 노쇠로 죽을 위험에 있는 신자에게 영적 위로와 힘을 주는 성사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가 남았습니다. 이것은 신자에게 주는 성사가 아닙니다. 성직에 봉사할 이들을 거룩하게 하는 성례입니다. ‘서품성사’, 신품성사라고 부릅니다.
    개혁한 교회는 이 많은 성례들 중에 세례와 성찬 두 가지만을 성례라고 인정합니다. 나머지는 성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결혼과 가정이 아무리 귀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제의 집례로 결혼식이 성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결혼식을 교회에서 하지 않고 결혼식장에서 하는 추세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결혼식을 했다고 해서 그 결혼 자체가, 부부관계가 자동적으로 거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라고 하셨습니다(마 28:19-20). 또한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하시면서 성찬식을 제정하셨습니다. 떡을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하셨고, 잔을 나누어 주시면서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언약의 피이다’라고 하셨습니다(마 26:26-28; 막 14:22-25; 눅 22:14-20). 이렇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직전에, 부활 직후에 성찬식과 세례식이 제정되었습니다. 성찬과 세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보여주고, 그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삽니다. 우리는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직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는데 이것을 세족식이라고 부릅니다. 현대교회는 성찬식을 자주 거행하지는 않지만 각 부서별로, 특별한 절기 때에 세족식을 종종 행합니다. 목사가 교인들의 발을 씻어주면 교인들이 얼마나 감격하겠습니까? 그것이 아무리 감동적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세례와 성찬 외에는 성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설교로 말미암아 생겨난 믿음을 지속적으로 강화시켜 주는 방편으로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성례는 세례와 성찬, 두가지 뿐입니다. 교회가 이 세례와 성찬을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모습대로 잘 사용하면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성례 외에 다른 것을 통해 더 크게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운 체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유아세례의 중요성을 알아야 하겠다

    세례는 물을 통해 우리가 모든 죄로부터 씻겨졌음을 보입니다. 이 물이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죽고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례에 장례식과 부활식이 같이 있습니다. 사람이 물 속에 들어가면 죽듯이 물 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건져냄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몸 전체를 물에 완전히 담그는 침례야말로 세례의 의미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물 속에 잠겼다가 다시 나오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분명하게 시위하기 때문입니다. 물 몇 방울 찍어 바르는 것으로는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 이렇게 침례를 행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세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세례냐, 침례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은 유아세례의 문제입니다. 침례교회의 특징은 침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인세례만 인정합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라고 하더라도 유아세례를 베풀지 않습니다. 아이가 아무 것도 모르는데 세례를 베푸는 것은 잘못된 것이요, 미신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인이 될 때까지 이 아이는 어떤 상태라고 보아야 하겠습니까? 이 아이는 신자입니까, 아니면 불신자입니까? 성인이 되어서 세례 받을 때까지는 불신자의 아이와 똑 같은 것입니까? 이런 곤란한 질문 때문에 침례교회에서는 ‘헌아식’이라는 것을 행합니다. 아이를 하나님께 바치는 예식입니다. 우리는 가장 바람직한 헌아식이 유아세례라고 봅니다. 우리는 언약에 근거해서 아이를 하나님께 바치는 세례를 베풉니다.
    유아세례를 통해 우리는 성인세례와는 다른 풍성한 은혜와 감격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인세례만을 고집하는 것은 ‘오직 우리의 믿음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는 주장과 다를 바가 아닙니다. 유아세례를 베푸는 것은 우리의 믿음 이전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7장에 기록되어 있듯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신 후에 그 언약에 대한 증표로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이라는 것을 몸에 새겨 넣으라는 것입니다. 누가 할례를 받았습니까? 아브라함에게 속한 남자는 누구든지, 심지어는 종의 자녀라고 할지라도 태어난 지 8일째에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할례를 행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과 그에게 속한 모든 자들, 그리고 그 모든 후손들과 더불어 맺은 언약이라는 것을 보이셨습니다.
    아이의 생식기 표피를 베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합니까? 그렇습니다. 언약의 표와 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받으려고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진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이 육체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해서 할례를 무시하면 안됩니다. 할례는 몸에 새겨진 언약백성의 표입니다. 그것을 부적처럼 생각해서는 안되겠지만 자신의 육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았다는 것을 몸에까지 새긴 할례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우리는 이 할례가 신약시대에 세례로 대체되었다고 믿기에 유아에게도 세례를 베풉니다. 세례를 통해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는 불신자의 자녀와 구별됩니다. 부모는 그 자녀가 혹 영아 때에 죽더라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확신 가운데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개혁한 교회는 되도록이면 빨리 유아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토요일에 출산했는데 바로 다음날인 주일에 세례를 베풀기도 했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한국에서는 산모나 아기가 교회에 출석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달 이상이 걸리지 않습니까? 유럽의 산모들 같은 경우에는 아기를 아주 작게 낳기 때문에 출산이 어렵지 않습니다. 출산 후 산모는 금방 찬물에 샤워를 하고 맨발로 병원을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음 날 아기를 데리고 나와서 세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루라도 빨리 언약의 자녀가 세례받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언약의 가정에서 태어난 언약의 자녀이기에 하루라도 빨리 언약의 표를 가지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재세례와 사적으로 세례 베푸는 것은 잘못되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재세례파라는 무리가 등장합니다. 이들이 침례교회의 선조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들은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언약가정에서 태어난 유아라고 할지라도 성인이 된 후에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 세례받은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인이 되어서 다시금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들의 명칭이 재세례파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실상 재세례를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았으니 그들은 그냥 하나의 세례를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유아세례받은 이들에게 다시 세례를 주었기 때문에 재세례를 베푼 것입니다. 재세례를 주장한 이들이 종교개혁 이후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초대교회부터 재세례를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의 핍박으로 인해 배교한 이들이 생겼습니다. 이들을 교회가 받아주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느냐의 문제로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생겨났습니다. 배교한 사제들이 베푼 세례는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재세례를 주장하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된 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법은 재세례를 주장하는 이들과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이들, 이 두 가지 이단을 사형에 선고했습니다. 삼위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오직 한 번만 받아야 합니다.
    요즘 세례의 중요성을 깊이 자각하지 못하고 사적으로 세례를 베푸는 일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전도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자 교회로 데려가지 않고 친구들을 불러다가 수영장에서 세례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선교지의 특수한 상황도 아닌데 말입니다. 세례는 사적인 일이 아닙니다. 세례는 가족행사로 치를 수도 없습니다. 세례받는 것과 교인이 되는 것이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세례는 온 회중과 더불어 하는 교회의 공적인 일입니다. 세례는 온 교회 앞에서 예배시에 베풀어야 합니다.
    예배 중 언제 세례를 베푸는 것이 좋겠습니까? 예전에는 설교 전에 세례를 베풀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이와 산모가 설교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가 힘들다는 이유였습니다. 또한 설교가 끝나면 교인들이 집으로 가 버릴 수 있기에 설교 전에 세례를 베푸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성례는 설교와의 관련성 속에서 보아야 하기에 설교 후가 자연스럽습니다. 우리는 은혜의 방편이 ‘말씀과 성례’라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성례와 말씀’이 아닙니다. 말씀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성례가 옵니다. 성례가 말씀의 조명을 받지 않으면 미신처럼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적인 신앙고백이 중요하다

    유아세례를 받은 아이는 교회의 정식교인입니다. 나중에 공적인 신앙고백을 해야 비로소 완전한 교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아세례를 통해 그 아이는 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유아세례 받은 아이가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합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면 동일하게 아무 것도 몰라도 성찬에 참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어떤 교회들에서는 공적인 신앙고백을 하기 전이라도 성찬에 참여시키기도 합니다. 세례는 언약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일찍 참여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핑계 댈 일이 아닙니다. 반면, 성찬은 알고 참여해야 풍성한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이 성찬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아세례 받은 아이가 자라서 공적인 신앙고백을 하게 되면 성찬에 참여시킵니다. 유아세례 받은 우리 친구들이 성찬에 참여해서 빵을 먹고 싶으면 빨리 공적인 신앙고백을 하기 바랍니다.
    유아세례 받은 아이는 일반적으로 만 14세 이상이 되면 ‘공적인 신앙고백’을 통해 성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공적인 신앙고백은 많은 교회에서 입교예식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왜 공적인 신앙고백이라고 부르느냐 하면 이 입교예식이란 말이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입교라는 것은 교회에 들어오는 것, 즉 교인이 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까? 입교를 통해 비로소 교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약의 자녀는 유아세례를 통해 이미 교인이 되었습니다. 입교라는 말은 유아세례의 중요성을 간과한 말입니다. 공적인 신앙고백은 성찬에 참여하기를 허락하는 예식입니다. 개혁 이후의 역사를 보면 이 예식이 부담스러워 미루다가 공적인 신앙고백을 하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공적 신앙고백을 무한정 미루면 안됩니다.

잔치와 교제로서의 성찬을 회복해야 하겠다

    이제 성찬에 관해 살펴 보겠습니다. 성찬은 떡과 잔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성찬도 당연히 설교 후에 해야 할 것입니다. 성찬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하나됨입니다. 성찬의 떡과 잔을 먹고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므로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어디에서도, 다른 어떤 체험을 통해서도 경험할 수 없는 그리스도와의 하나됨을 성찬에서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참여한 다른 신자들과 하나되는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이 하나됨을 구체적으로 시위하기 위해 큰 떡을 가지고 떼어 나누는 행위를 합니다. 포도잔도 이미 나누어진 잔이 아니라 큰 잔을 돌려가면서 마시기도 합니다. 교회역사를 보면 세례와 관련해서 이견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거의 의견의 일치를 보았습니다. 성찬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됨을 시위하는 중요한 성례임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의 역사는 성찬 때문에 교회가 갈갈이 찢겨져 나간 역사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릅니다.
    개혁은 미사를 설교중심의 예배로 바꾸었습니다. 잘한 것입니다. 하지만 개혁은 로마교회의 미사에 대한 지나친 반동으로 성찬을 자주 시행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1년에 3번 내지 4번밖에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1부 예배가 말씀예전이었고, 2부 예배가 성찬예전이었습니다. 요즘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하는 말을 많이 합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려는 노력 중의 하나는 예배를 개혁하는 것이요, 예배를 개혁하는 것은 말씀예전과 성찬예전이 함께 있는 예배를 만드는 것입니다. 설교와 더불어 성찬이 함께 있어야 온전한 예배일 수 있다는 주장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성찬의 요소 중에 하나는 ‘잔치로서의 성찬’개념입니다. 개혁 이후 경건주의와 신비주의 영향으로 성찬에 우리는 참여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강조 때문에 성찬은 장례식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성찬을 자주 행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성찬참여를 회피하는 일마저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 말씀에 보니 초대교인들은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떡을 뗐다는 것은 성찬식을 말합니다.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는 것을 애찬을 가리킵니다. 초대교회는 성찬을 하나의 의식으로 끝내지 않고 남아있는 것을 애찬으로 연결시켜서 흥겨운 잔치를 벌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생생하게 목격한 이들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식을 행하면서 장례식 분위기는커녕 잔치와 축제를 벌였습니다.
    이후에 초대교회에서는 성찬예전이 시작될 때 세례받지 않은 이들은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게 오해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신자들만 은밀하게 모여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과 마시는 것을 식인풍습으로 오해했습니다. 예수쟁이들은 식인종이라는 소문이 퍼져 핍박받게 되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세례받은 이들만 성찬에 참여시킨 것은 성찬의 폐쇄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찬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진정으로 하나되는 가장 친밀하고 은혜로운 성례입니다. 이 성례에는 믿지 않는 이들이 아무런 유익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울타리를 쳤습니다.
    성찬식은 하나됨을 위해 살겠다는 서약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세례받지 않은 이들이 돌아가고 나면 성찬에 참여하는 신자들끼리 먼저 평화의 입맞춤을 했습니다. 성경에서 거룩하게 서로 입맞춤하라는 말씀은 성찬식을 가리키는 말씀이었습니다(롬 16:16; 고전 16:20; 고후 13:11; 산전 5:26; 벧전 5:14). 성찬식에 참여할 때 독특한 행위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회중은 성찬상으로 나아와 떡과 잔을 받기 전에 따로 놓여진 상 위에 구제헌금을 했습니다. 연보를 하고 나서 떡과 잔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내어 주셨듯이 자신들도 가지고 있는 것을 이웃과 더불어 나누면서 주님의 상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성례를 소중하게 받아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셔서 은혜의 방편으로 주신 성례를 소중하게 받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시려고 성례를 주셨습니다. 또한 성례는 우리의 어리석음과 완악함을 치유하는 길입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인침을 받고, 성찬을 통해 우리는 지속적으로 복음약속을 새롭게 확인 받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설교 못지 않게 은혜로운 것이 성례입니다. 복음선포인 설교를 확증해 주는 것이 성례입니다. 설교의 절정이 성례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성례가 없는 예배는 뭔가 아쉽고 모자랍니다.
    신자는 성례로 삽니다. 신자는 세례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성찬상에서 먹고 마시면서 살아갑니다. 신자의 출생이 세례이고, 신자의 양식이 성찬입니다. 신자는 늘 세례로 삽니다. 나는 세례받았다고 고백하며 삽니다. 그리고 신자는 늘 하늘양식을 먹고 삽니다. 우리를 늘 새롭게 하고 든든히 세워주는 것이 성례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불러 일으키지만 성례는 불러 일으켜진 믿음을 더 강화시킵니다. 우리는 성례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예배때 말씀과 더불어 성례가 있어야 합니다. 세례식은 매 주일 예배마다 있기 힘듭니다. 그런데 성찬식은 매 주일 예배때마다 해도 됩니다. 말씀과 함께 성찬이 있다면 예배가 훨씬 더 풍성합니다. 말씀 때문에 성찬이 없어도 되고, 성찬 때문에 말씀이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은 성찬을 강화하고, 성찬은 또한 말씀을 강화합니다. 우리는 말씀과 함께 성찬을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출생을 새롭게 돌아보고, 우리의 양식이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성례는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시청각교육입니다. 중세시대에 예배당안에 있었던 온갖 성화, 성상, 성유물과 결코 비교할 수 없는 천상의 선물이 여기 있습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의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든든하다는 것을 보십시오. 자신을 믿고 의지할 이유가 없으며,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보십시오. 여러분의 열심을 내세워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는 것을 아시고 보여주기까지 하십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도마라는 제자에게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친히 성례를 제정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보라고 하십니다.
    우리 모두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주님 자신을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성례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이루신 모든 은덕을 보고 누립니다. 이 성례를 소중하게 받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눈에 보일 것입니다. 단지 보는 것 정도가 아니라 그 달콤한 맛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것을 보여달라고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더 이상 다른 맛을 보여달라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뭘 더 보여주셔야 하고, 뭘 더 맛보여 주셔야 한단 말입니까? 하나님은 성례를 통해 충분히 보여주시고 맛보여 주셨습니다. 우리의 체질을 알고 배려해서 주신 이 성례의 은혜를 가면 갈수록 더 풍성히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는 은혜가 공짜이기에 그냥 무조건적으로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저희가 대가를 지불해야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려주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저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이것을 알고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은혜의 방편인 말씀과 성례를 주셔서 저희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은혜를 받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스도를 맛보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과 성례가 있는 예배 자리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자리임을 알고 소중하게 생각하도록 도와 주옵소서. 매 주일마다 말씀과 성례가 끊이지 않는 자리에까지 이르도록 도와 주옵소서.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온전히 누리게 하옵소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사사로이 은혜 받는 길을 찾으려는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몸 된 교회가 예배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모든 필요한 은혜를 다 공급해 주심을 알고 누리게 하옵소서. 저희는 세례받는 이들을 보면서, 함께 한 상에 참여하면서 다른 성도들이 받은 구원을 같이 받았고, 다른 성도들이 누리는 은혜를 같이 누리고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찾아와 주셔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 묵상하고 나누기


1. 말씀과 성례의 관계를 말해 봅시다.

2. 성례라는 용어의 유례를 말해 봅시다.

3. 요리문답에서 성례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습니까?

4. 로마교회의 성례관을 말해 봅시다.

5. 유아세례와 공적인 신앙고백의 중요성을 말해 봅시다.

6. 성찬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7. 말씀과 성례의 중요성을 예배와 삶에 적용해 봅시다.


어린이를 위한 질문

1. 유아세례는 안 해도 상관이 없다, 맞습니까?

2. 성찬은 잔치와 교제가 핵심이다, 맞습니까?

3. 성례는 (    )약속의 눈에 보이는 표와 인으로 (    )와 함께 한 쌍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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